소설가 김숨은 2016년 ‘L의 운동화’라는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L의 운동화는 이한열의 운동화를 일컫는다. 1987년 6월 9일이었다. 서울 연세대에서 열린 반독재 민주화 시위에 참여한 21살 대학 2학년생 이한열은 경찰이 쏜 최루탄이 숨골에 박히면서 쓰러진다. 학우가 달려와 부축했지만, 그의 몸은 꽃잎처럼 스러졌다. 한 달여 뒤 이한열은 숨을 거두었고, 이 억울하고 안타까운 죽음에 분노한 수많은 한국인은 떨쳐 일어났다. 전두환 독재정권을 몰아낸 87년 6월 항쟁은 그렇게 터져 나왔다.
이한열의 유품 가운데 ‘운동화 한 짝’이 있었다. 흰색 삼화고무 타이거 운동화 오른쪽이었다. 나머지 왼쪽 신발은 어디 갔는지 모른다. 유실돼 가던 이 한 짝을 2015년 문화재·미술품 복원전문가가 실제로 복원하는 과정을 끝까지 함께하며, 작가 김숨은 이한열의 죽음이 갖는 무게와 의미를 곱씹고 곱씹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타이거 운동화는 누가 사줬을까?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지난 9일 광주 조선대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2세. 장례식은 광주지역 시민사회를 비롯한 사회 각계가 참여하는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으로 치른다. 오늘 오전 9시 발인해 광주 망월동묘역에 고인을 안장한다. 1987년 아들을 앞서 보낸 뒤, 배은심 여사의 삶은 아들의 넋을 일깨워 더 좋아진 세상을 보여주는 일로 일관했다. 고인은 스스로 민주화 운동가가 되어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이웃을 보듬었다.
고인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에 몸담아 회장까지 지내며 전국 곳곳 민주화 운동, 인권 투쟁 현장을 찾아 불의에 저항하고 사람을 보살폈다. 유가협은 한국 민주화에 크게 이바지한 단체로 꼽힌다. 또한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에 앞장섰고, 2009년 용산참사가 터지자 용산범대위 공동대표를 맡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배 여사의 민주화 공로를 높이 사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1987년 그날 이한열이 신었던 운동화는 배은심 여사가 사주지 않았을까? 직접 사주진 않았더라도, 그 타이거 운동화를 살 돈은 배 여사가 주지 않았을까? 궁금하지만, 둘 다 아니어도 상관없다. 이한열 열사와 배은심 여사가 같은 신발을 신고 같은 길을 걸었음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35년 만에 하늘에서 상봉한 모자가 하얗게 빛나는 운동화를 신고 환하게 웃으며 조국의 민주주주의 발전을 기원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조봉권 기획에디터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