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문득 요즘은 정말로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는 걸 느낀 순간이 있었다. 직장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는데, 무슨 영화를 좋아하느냐, 요즘 어떤 영화를 보느냐, 어디가 데이트하기 좋고 주말에는 어떤 넷플릭스 드라마를 정주행하기 좋으냐고 서로 물어보면서였다. 나는 애초 상대에게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요즘 어떤 책을 읽는지를 묻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주위를 둘러보아도 매주 혹은 매달 몇 권의 책을 취미로 읽는 사람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작가나 편집자를 만나면 책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하지만, 그런 ‘업계’ 사람이 아닌 사람에게 ‘책’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 자체가 이제는 꽤나 이상한 일이 되어버렸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 앉아 있어도,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을 뿐, 책 읽는 사람은 천연기념물처럼 드물다.
출판계는 단군 이래 언제나 불황이었다고는 하지만, 요즘 들어 업계 사람들을 만나면 더 곡소리가 나온다. 서점들과 도매업체가 폐업하고, 제본소도 찾기 어려워지고, 편집자들의 처우도 아쉬운 면이 많은 모양이다. 자연스레 그런 시대에 글을 쓴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과연 책을 읽지 않는 시대이지만, 사람들이 정말 글도 읽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아마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오히려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일 무언가를 읽고 쓰는 시대이기도 하다.
온라인 커뮤니티, 블로그, SNS 등에는 매일 다 읽을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글들이 쏟아진다. 인터넷 언론사도 전례 없이 늘어나서, 하나의 이슈만 터지더라도 관련 기사를 일일이 다 클릭해 볼 수도 없을 정도이다. 생각해보면, 단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을 뿐, 글을 읽지 않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과거처럼 신문이나 잡지, 책에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한정되었던 시대는 끝나고, 누구나 매일 같이 글을 쓰는 시대이기도 하다. 하루에만 각종 온라인 공간에서 평생 읽을 수 없는 양의 글이 쏟아지고 있다. 어찌 보면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시대가 저물어가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면, 비록 사람들이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여도 글을 쓸 이유는 남아 있는 셈이다. 나는 글쓰기라는 것이 홀로 고립되어,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다. 오히려 글쓰기란 타인에게 말 걸기나 다른 사람과 어우러지길 바라는 대화에 가깝다고 믿는다. 그런 관점에서는 여전히 독자가 존재하고, 글 읽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글을 써나갈 아주 중요한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처럼 글 쓰는 공간과 방식의 ‘거대한 전환’에서 중요한 것은 글이 읽히고 쓰이는 일의 ‘직접성’이다. 과거에는 글이 쓰이고, 책으로 만들어지고, 출간되어 독자에게 닿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면, 이런 시대에 글은 쓰이는 순간부터 읽히기 시작한다. 또한 독자의 피드백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글이 더 ‘대화적인’ 성격을 띤다. 작가는 점점 더 골방에서 홀로 벽을 마주 보고 글 쓰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오히려 초연결의 시대라는 말에 가장 어울릴 법한 사람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매일 하는 일이고, 매일 소통하는 일이며, 매일 주고받고, 매일 고쳐지고, 매일 나아가는 역동적인 행위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건 변한다. 나는 종이라는 질감 위에 새겨진 검은 잉크의 매력을 여전히 사랑하지만, 종이책이라는 매체나 장문의 글이 읽히는 시대는 저물어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먼 미래에도 우리는 여전히 언어를 사용하고, 대화를 하고, 문자와 글을 쓰며 살아갈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곳에서 수시로 글을 쓰며 사는 시대가 이미 왔고, 앞으로 올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출판 시장이 어렵고, 사람들 손에서 책이 떠나갈지라도, 나는 계속 글을 쓸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런 시대에는, 모든 사람들이 글쓰기를 한결 덜 심각하게 느끼면서, 일상적으로 누리기를 바라보기도 한다.
문화평론가 겸 변호사·‘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