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는 여기저기 그라피티 벽화를 남기고 유명 미술관에 작품을 몰래 걸어두는 등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유명한 세계적인 예술가다. 그의 작품은 경매에 나왔다 하면 수십억 원에 팔려나간다. 세계 미술시장에서 주목받다 보니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워낙 고가라 일반인들은 선뜻 구입하기 어렵다. 그런데 작품을 여러 명이 나눠서 산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술투자 플랫폼 테사와 롯데멤버스가 지난 22일부터 뱅크시의 작품 ‘잭앤질’ 조각투자 공모를 하자 480명이 몰려 총 1억2500만 원 상당의 분할소유권이 시작 이틀 만에 완판됐다고 한다. 1인당 26만 원 정도를 투자하면 작품의 공동주인이 된다. ‘조각투자’는 비싼 자산을 지분 형태로 쪼개 공동투자자들이 소유권을 나눠 갖는 것을 말한다. 큰돈이 들지 않아 MZ(1980년 초반~2000년대 중반 출생) 세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미술품 조각투자는 그림 원본은 놔둔 채 소유권을 수백~수만 조각으로 나눠 사는 방식이다. 투자 수익은 작품 값이 충분히 올랐을 때 소유주들의 동의를 받아 재판매해 발생한다. 재력가들의 전유물이었던 ‘아트테크’가 푼돈으로도 가능한 시대가 된 것이다. 미술품뿐만 아니라 롤렉스시계와 같은 명품, 고급 와인 등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품목에도 조각투자가 활발하다. 물품을 되파는 리셀 시장에서 샤넬, 루이비통 등 인기 명품은 수백만~수천만 원의 웃돈이 붙는다. 목돈이 없어도 명품 투자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조각투자가 인기를 끄는 이유다.
최근 송아지를 키워 수익금을 챙기는 투자 상품까지 나왔다. 투자플랫폼 뱅카우는 공동투자로 매입한 송아지를 2년간 농가에 맡겨 사육한 뒤 경매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나눠준다. ‘테슬라 0.1주’처럼 값비싼 주식 1주를 쪼개서 사는 ‘소수점 거래’에서 시작된 조각투자의 영역이 어디까지 확대될지 알 수 없다. 문제는 투자자 보호다. 관련업체들 중 정식으로 금융투자업체로 등록한 경우가 거의 없어서다. 거래규모가 작아 작전 세력이 마음만 먹으면 시세 조종을 할 수 있지만 이를 감독할 기관이 없다.
평생 직장을 다녀도 내 집마련이 어려워지면서 주식, 코인에 조각투자까지 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이런 ‘짠테크’를 하는 서민들을 보호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얼마 전 있었던 선불지급 ‘먹튀’ 사건인 머지포인트 피해가 다시 발생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이은정 논설위원 ej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