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문명 교류에는 ‘실크로드’만 있는 게 아니다. 이탈리아의 파스타와 한국의 국수를 이어주는 ‘누들로드’도 있다. 밥과 함께 먹거리의 양대 축을 이루는 술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우리가 포도주라고 번역하는 와인이 대표적이다. 중국 서진의 학자 장화가 지은 ‘박물지’에 따르면, 한나라 외교관 장건이 기원전 128년께 서역에서 포도를 도입했다. 이후 포도주를 빚어 마신 기록들이 보인다. ‘멀리서 보니 한수(漢水)가 오리 머리처럼 푸르러/마치 포도주가 막 익어갈 때 같구나’. 8세기 시인 이백의 ‘양양가’ 시구가 한 예다.
하지만 중국의 포도주는 서양의 와인과는 다르다. 와인은 포도만으로 빚었지만, 중국 포도주는 쌀과 포도를 섞어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고려 말 안축의 ‘근재집’이나 16세기 김유의 ‘수운잡방’, 17세기 허준의 ‘동의보감’ 등에는 쌀과 포도를 원료로 한 양조법이 나와 있다. 우리나라에 서양의 와인이 첫선을 보인 건 네덜란드인 선원 헨드릭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착한 1653년이다. “한 통의 붉은 포도주를 들고 가서 우리가 바위 틈에서 발견한 회사용 은술잔에 따랐다. 그들(당시 대정현감 권극중과 판관 노정으로 추정)은 포도주를 맛보더니 좋은지 연거푸 술잔을 기울였는데, 나중에는 대단히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하멜은 그해 8월 19일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제대로 된 와인 시음기는 조선 후기 학자 이기지의 ‘일암집’에 나온다. 그는 베이징에서 서양선교사들을 만나 수차례 와인을 맛봤다. “입에 들어갈 땐 상쾌하고 목으로 넘어갈 때는 부드러워 그 맛을 형언할 수 없었다. 선인의 음료라 하더라도 이보다 낫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1720년 10월 10일 일기에서 와인을 이같이 극찬했다. 와인이 우리나라에 공식 수입되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267년 흐른 1987년이다.
올해 들어 부산 이마트에서 전체 주류 매출 중 와인(23.6%)이 맥주(22.4%)을 누르고 수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전국적으론 2년 전 와인이 맥주를 앞섰지만, 부산에선 올해가 처음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자리잡은 ‘홈술’ 트렌드와 건강 걱정 등 영향으로 분석된다. 1만 원 미만 제품은 지난해보다 3% 증가한 반면 10만 원 이상은 73% 늘어나는 등 고가 와인 매출 신장률이 두드러진다. 아무리 좋은 술인들 건강에 유익하려면 절주가 필수다. 탈무드는 “신은 인류에게 포도를 선물했고, 악마는 포도주 담그는 법을 선물했다” 고 했다. 과음하면 악마의 선물이 될 뿐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