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가리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종교가 먼저 떠오른다. 한편으로 강압적일 수도, 자발적일 수도 있다. 또 낯을 들 수 없는 일을 저질렀을 경우 얼굴을 가린다. 때로는 특정인의 대역을 하려는 특수한 목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지난 8월 탈레반 무장세력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점령하자 이슬람 여성들의 전통 복식인 ‘부르카’ 가격이 급등했다. 공포에 질린 여성들의 부르카 수요가 급증했고, 사재기 현상까지 일어났기 때문이란다. 부르카는 얼굴을 드러내는 차도르나 히잡과는 달리 전신을 가리고 눈 부위는 망사로 덮는다. 이슬람 여성의 복식 가운데 가장 폐쇄적이다. 그래서 여성 억압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부르카가 종교적 의무 내지 강압적인 얼굴 가리기라면, 유명 인사들의 ‘위장’은 자발적인 사례이다. 얼굴이 드러나면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으니까, 검은 안경이나 모자로 사실상 ‘변장’을 한다. 요즘은 코로나19 사태 덕분(?)에 마스크까지 착용하다 보니 그쯤 되면 얼굴을 알아보기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흉악범들이 체포됐을 때도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때로는 점퍼로 얼굴을 덮기도 한다.
일본에는 가케무샤(影武者 ·그림자 무사)가 있다. 전쟁이나 전투시 무장(武將)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됐다. 헤이안 시대의 다이라노 마사카도에게는 그림자 무사가 6명이나 있었다. 현대 국가에서도 독재자들은 가케무샤를 내세우기도 한다.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몇 명의 대역이 있다는 설이 나돈다. 비슷한 말로 ‘디코이(decoy)’도 있다. 오리사냥을 위해 오리 모양의 인형을 풀어놓고, 같은 무리인줄 알고 날아오는 오리를 사냥하는, 일종의 ‘미끼’다.
그림자 무사 또는 디코이가 우리 대선판에도 등장했다. 심야 낙상으로 억측을 불러일으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 배우자인 김혜경 씨 주변의 얘기다. ‘사고 부위’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고, 밀착취재가 시작되자, 검정색 망토와 모자, 선글라스에 검정 마스크로, 영화 ‘스타워즈’의 캐릭터 다스베이더를 연상케 하는 ‘올 블랙’ 여성이 등장했다. 김 씨로 판단한 언론이 촬영해 보도했으나, 이 후보 캠프에서는 ‘수행원’이라고 반박했다. 이 후보 캠프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가케무샤’ 아니면 ‘디코이’다. 어쨌거나 역대 보기 힘든 광경이다. 역대 최악으로 평가받는 대선이라 그런지, 뭐든 상상 그 이상이다.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놀라울 것이 없는 대선이다.
김경국 선임기자 thrk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