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교육자 윌리엄 클라크는 일본 메이지 유신 시기에 현대식 전문학교 설립을 위해 일본 정부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당시 그가 했던 말은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명해졌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 추측컨대 일제 강점기에 수입되어 널리 퍼졌던 것 같다. 나도 학창 시절 자주 들었던 말이다.
군사정권 때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터라, 당시 소년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장군 또는 대통령이란 답이 다수였다. 어른들은 이런 답에 “그 놈 참 포부도 크다.”며 칭찬했다. 그러니 야망이란 말을 매우 긍정적 의미로 썼고, 그냥 성공보다는 ‘대성(大成)’한다는 말을 좋아했다. 이런 말들에는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뜻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런데 클라크의 말은 정치적 야심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돈을 위해서도 아니고, 이기적으로 대성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사람들이 명성이라 부르는 덧없는 것을 위해서도 아니고, 인간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을 이루기 위해 큰 뜻을 품어라!” 그는 축재(蓄財), 출세, 허명(虛名) 등을 오히려 경계하며 ‘인간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위해 큰 뜻을 품으라고 한 것이었다. 도덕적인 주문이었다.
아마도 당시 군국주의가 거세던 일본에서 클라크의 말을 거두절미하고 자기들 편한 대로 야망의 의미를 해석해 그 ‘명언’을 퍼뜨린 것 같다.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들도 야망이란 말을 아주 좋아한다. 청소년들에게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면서 야망을 품으라고 한다.
야망은 매우 정치적인 용어다. 이는 그 어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서구어에서 야심 또는 야망을 뜻하는 말들은 라틴어 ‘암비오(ambio)’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암비오는 ‘돌아다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암비티오(ambitio)’라는 말이 나오고, 이는 고대 로마에서 관직을 얻으려는 자가 돌아다니며 파벌을 만들고 지지를 얻어내는 행위를 뜻했다.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는 인기 작전을 뜻하기도 했다.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였다.
정치사상사를 보면 고대로부터 야망은 경계의 대상이었다. 동서양 고사에서도 나랏일에 적합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쓰기 위해, 거만하게 나대는 자는 경계하고 오히려 숨어 있는 현자를 찾아 다녔다. 마키아벨리같이 권모술수를 주창했다고 여겨지는 사상가도 야망은 공화국의 근간을 흔드는 악덕이자 폭군 정치로 가는 길이라고 경계했다.
야망은 욕망과도 다르다. 정치철학자 레오 스트라우스는 야망을 “자신의 필요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야망은 그것에 사로잡힌 자에게나 주위 사람들에게나 위험한 것이다. 야망은 전제 군주 시대의 의식이 담긴 언어다. 그럼에도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야망의 정치인’들이 나선다. 임금 왕(王) 자에 집착하는 후보도 등장한다. 미신이라고? 천만에, 그건 의식의 문제다. 왕 자가 고대 권력의 상징인 날 선 도끼를 세워놓은 형상의 갑골문에서 나온 글자임을 상기하면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런 모든 우려에도 선거판에 뛰어든 자의 야망을 제어하기란 어렵다. 무엇보다도 적지 않은 유권자들에겐 야망의 정치인이 인기 있기 때문이다. 내각책임제보다 권력의 아우라가 강한 대통령제의 선거가 훨씬 더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합리적 유권자와 건강한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있다. 그것은 야심가의 깜냥을 검증하는 일이다. 곧 나랏일을 맡아서 해낼 만한 능력을 갖추었는지 철저히 따져 보아야 한다.
앞서 언급한 스트라우스의 말을 확장해서 되새길 필요가 있다. 야망은 자신의 필요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보다 더 많은 것을 하려는 욕망이기 때문이다. 허영과 야망이 없는 정치인은 없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한 야심가는 나름 영리함을 발휘해왔다. 그 영리함이란 자신의 야망에 깜냥이 상응하는지 항상 스스로 검증하는 노력이었다. 그럼으로써 야망에 균형을 맞추는 깜냥이라는 저울추를 지속적으로 늘려가는 노력 또한 했다. 카이사르가 그랬고 나폴레옹이 그랬다. 이들은 모두 제왕의 시대 인물들이었고, 그런 노력에도 말년은 모두 비참하고 불행했다.
나는 지금 괜한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큰 뜻’을 품고 대선에 나선 분들께 이런 말은 소음 수준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유용한 조언을 하나 하고자 한다. 대선은 장거리 경주이니 지금쯤 미리 특별한 건강 검진을 권유하고 싶다.
일찍이 찰스 다윈은 동물의 감정 상태와 신체 변화 사이의 관계를 광범위하게 연구한 바 있다. 인간도 동물인지라 우리의 모든 감정은 몸 속 장기의 변화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사랑에 심장이 두근대고, 슬픔에 창자가 끊어지며, 분노에 피가 끓는다고 말한다. 비유적이긴 하지만 이런 표현 역시 신체의 생리적 현실을 반영한다. 깜냥에 비해 야망이 지나치다면 간이 부었기 때문일 수 있다. 건강 검진의 권유는 진지한 조언이다. 나랏일을 잘 하려면 의식의 건강, 내장의 건강 모두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