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백화점에서 근무한 지 21년 차인 필자는 지난달 서울지법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2년 전 부산에서 상담실장으로 근무하던 당시 블랙컨슈머 고객을 업무 방해로 혐의로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었는데 사건 증인으로 출석해달라는 전화였다. 단 몇 분을 위해 서울까지 가야 했지만 더욱 힘들었던 건 그들을 마주해 잊고 싶은 기억을 머릿속에 다시 떠올려야 하는 일이었다.
다시는 이 같은 일로 피해를 보는 감정노동자들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직원 보호를 우선한 회사 측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용기를 내 요구에 응했다.
2015년 한 주얼리 매장에서는 고객이 무릎 꿇어 사과하라는 요청에 두 명의 직원이 무릎을 꿇었고 같은 해 주차를 제대로 해달라는 주차도우미의 요청에 고객이 무릎을 꿇리고 따귀까지 때린 사건도 있었다. 2018년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서는 고객이 피부에 트러블이 났다고 직원을 향해 화장품을 내던지며 물리적으로 밀치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 감정노동자로 집계된 근로자는 700만 명을 넘어 전체 노동자의 35%가 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2018년 10월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개정되면서 고객 응대를 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폭언이나 폭행 등으로부터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카드사 통신사 백화점 등 유선상담을 하기 위해서는 해당 내용에 대한 다소 긴 멘트를 듣고 나서야 전화 상담을 진행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방송에서 114 교환원이 인터뷰를 하다 한 고객의 성희롱과 욕설에 울먹이자 사회자 유재석이 분노하며 상황극을 하는 유튜브 영상은 조회 수 50만을 넘겼고 1000개에 가까운 댓글 중 다수는 상담원들의 입장에 공감하는 글이었다. 아직 만연한 고객의 갑질에도 자신이 속한 회사 이미지를 생각하면 나 하나 희생해서 마무리한다는 생각으로 참는 감정노동자들이 대다수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업무방해가 성립되기 위한 요건이 충족되는 것이 쉽지 않고 설사 성립된다고 하더라도 이후 진술 조사와 재판 등의 복잡하고 힘든 절차를 감내해야 한다. 사측에서 비협조적이라면 홀로 싸움을 해야 한다.
극소수의 고객들이지만 참기만 한 감정노동자들이 인내의 마지노선으로 법적 대응을 선택했다면 사측에서는 앞선 사례와 같이 적극적으로 직원을 도와주어야 마땅하다. 영화 ‘부당거래’에서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대사가 나온다. 며칠 전에도 한 남성의 지속적인 전화상담을 차단한 적이 있는데 이 또한 회사 측의 적극적인 대책 매뉴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남성은 작년부터 성희롱과 욕설을 일삼고 직원들이 간첩이고 창녀라는 등의 알 수 없는 이야기를 10여 분간 하다가 전화를 끊어버렸다. 일방적으로 수화기 너머 알지도 못하는 고객의 우롱하는 말들을 듣고 있자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욕설 등 전화를 종료해야 할 언어가 나와야지만 먼저 종결할 수 있기에 그 시간은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진다.
슬퍼도 웃어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배려는 고객을 진심으로 대하는 그들에게 큰 힘이 된다. 오늘도 “수고하십니다”고 인사 먼저 해주는 고객의 한마디에 하루의 파이팅을 다짐하는 나처럼 말이다.
롯데백화점 대구점 고객상담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