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마쳤다. 무슨 얄궂은 운명인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예약 폭주에 따른 몇 차례의 시스템 오류 탓에 계획과는 달리 일주일 이상 접종이 미뤄졌다. 거기다 백신 종류도 오락가락 했다. 당초 모더나로 예고됐던 백신은 수급 차질이 빚어지며 결국 화이자로 귀착됐다. 다소 시간이 늦어지고 종류가 뭐면 어떠랴. 간혹 불거지는 접종 부작용 소식이 꺼림칙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마침내 기나긴 터널을 벗어나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는 안도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 안도감도 잠시일 뿐이었다. 지난 2월 국내에서 백신 첫 접종이 시작될 때만 해도 코로나로부터의 해방이 성큼 다가선 듯했다. 물론 9월까지 전 국민 70% 1차 접종 완료로 11월까지 집단 면역이 형성된다는 전제가 있긴 했다. 실제 이런저런 차질에도 현재의 접종 속도를 볼 때 이 목표는 이변이 없는 한 달성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이 같은 목표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대대적인 방역 강화에도 좀처럼 꺾이지 않는 4차 대유행은 폭발 직전이다. 과연 집단 면역이 가능한 건지 의구심도 늘어간다.
갈수록 세를 키우고 있는 변이 바이러스 또한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델타 변이는 이미 우세종이 됐고, 델타 플러스 변이가 국내에서도 발견됐다. 백신을 먼저 접종한 외국의 사례에서 우리나라의 불안한 앞날이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백신 접종을 시작할 당시 올 5월 쯤이면 집단 면역이 형성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2차 접종률이 50%를 넘어선 지금 알파 델타 등 각종 변이가 창궐하고 있다. 이는 접종률이 높은 영국 이스라엘 등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다 아직 위력이 확인되지 않은 람다, 에타, 이오타, 카파 등 세계보건기구(WHO)가 확인한 변이만 해도 10개에 달한다.
“전쟁의 양상이 바뀌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델타 변이 팬데믹이 이어지자 내놓은 평가다. 코로나와의 전쟁은 이제 장기전이 됐다는 판단이다. 백신 접종 목표를 70%대에서 80~90% 대로 상향하되, 사회적 거리두기를 대폭 완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향후 바이러스 확산에 대해서는 부스터샷으로 맞서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코로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른바 ‘위드(with) 코로나’로의 전환이다. 미국 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등도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미국 등 일부 국가의 방역 전략 전환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다만, 상당수 전문가들 사이에선 전 세계가 기대했던 집단 면역을 통한 코로나 종식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전망이 나온다. 각종 변이가 끊임없이 나오는 데다 백신 접종을 완료했는데도 돌파 감염이 발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게 그 이유다. 국내 일부 전문가들도 집단 면역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워진 만큼 이를 인정하고 코로나를 특별하지 않은 감염병으로 만들어 나가 점차 일상으로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위중증 또는 사망 비율을 낮추는 방향으로의 전략 수정을 검토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좀처럼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우리나라 역시 ‘위드 코로나’는 피할 수 없는 화두가 됐다. 성공 여부를 떠나 세계적 방역 전략 전환 흐름을 마냥 무시하기는 어렵다. 국민 피로도는 극에 달했고, 경제는 더 이상 떨어질 바닥도 없는 상황이니 시간이 흐를수록 이 같은 목소리는 힘을 얻어갈 것으로 보인다. 갈림길에 선 정부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까지 정부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정부는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예방접종, 경구용 치료제, 글로벌 변이 감시체계가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중 어느 것 하나도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만큼 시기상조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당장은 집단 면역 달성 기준으로 설정한 백신 접종률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라는 정부 판단은 옳다. 지금으로선 믿을 수 있는 게 백신 뿐이니, 여기에 일단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자칫하다간 또 다른 ‘희망고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또한 없지 않다. 수치상 이미 집단 면역에 가까운 국가에서도 코로나가 재확산하는 마당이다. WHO가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을 겨냥해 “적어도 오는 9월까지는 부스터샷 접종을 유예해 달라”고 촉구했지만 오불관언이다. 이들 나라에서 부스터샷으로 접종률을 더 높인다고 해도 ‘백신 빈국’에서 변이가 속출한다면 그간의 접종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인류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니 현재로선 코로나 대응에 뾰족한 정답은 없다. 그러나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현재의 봉쇄 전략을 무한정 이어가는 게 무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위드 코로나’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이제부터라도 출구전략 마련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