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버스’에 빨리 올라타라고 재촉하던 이준석 대표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지난달 29일 대선 출마선언을 본 이 대표의 내심을 짐작해본 결론이다.
당내에 국민적 지지를 얻는 대선후보가 마땅치 않은 제1야당 대표의 입장에서 이런 속내를 입으로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여러 가능성을 놓고 어떻게 다듬고 보태면 반듯한 대통령감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은 점점 깊어질 것 같다.
윤 전 총장이 내놓은 ‘국민께 드리는 말씀’은 대통령 출마를 하게된 배경을 설명한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왜’만 설명한 것인데, ‘어떻게’는 없다. 윤 전 총장은 현 정부를 ‘공정과 상식을 무너뜨리고 자유와 법치를 부정하는 세력’으로 규정했다. 그가 정권교체에 나서는 이유로 든 대목이다. 그러면서 “국민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할지에 대한 비전은 없다. 구체적인 구상은 앞으로 차차 들으면 될 일이라고 물러설 수 있지만,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 그는 평생을 검사로 살았다. 검사의 기본임무는 불법과 합법을 가리는 것이다. 모두 지나간 일에 대한 평가이고 법적 기준에 따른 단죄이다. 지어놓은 집을 보면서 온갖 흠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직접 손으로 집을 짓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영역이다.
국가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은 법무장관이 아니다. 검찰총장은 더더욱 아니다. 국정은 법치를 뛰어넘는 영역까지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져야 한다. 외교안보국방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세상사는 법으로 해결되지 않고, 설명되지 않는 일이 많다. 법적 정의가 세상의 정의가 아닌 경우도 허다하다. 세상은 이론만으로 되지도 않는다. 더 큰 벽은 과정이다. 수사지휘하듯이 국정을 할 수 없다. 복잡다단한 이해와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 대화하고 설득하고 타협해야 한다. 아니면 결단을 해야 하는데,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 윤 전 총장은 출마선언문에서 위법과 불법을 일삼는 현 집권세력에 대한 분노와 처단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검사다운 기개이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런데, 윤 전 총장은 검사를 떠나 대통령이 되겠다는 선언을 한 정치인이다.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맨 먼저 마주해야 할 대상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현 집권세력이다. 대통령은 국회의 동의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다. 오죽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연정’을 입에 올렸는지 생각하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87년체제 이후 상대 정치세력에 대해 유세에서는 비판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선출마선언문에서 단죄의 대상으로 규정한 경우를 본 기억이 없다. 대통령이 되면 국회의 협조를 구해야 하기 때문인데, 윤 전 총장의 정무적 능력에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윤 전 총장은 현 정권에 대한 비판에 이어 대안을 제시하면서 국민과 ‘같이 가자’는 동의와 지지를 구하는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다.
큰 선거가 있을 때 마다 인재영입이나 혁신공천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인물들이 정치권에 입문한다. 하지만 이 대표처럼 주요 정당의 ‘꼭대기’까지 오른 이는 극히 드물다. ‘이준석 현상’에 대한 정치권의 시각은 엇갈린다. 어떤 이는 과거 한국정치에서 종종 불다가 흩어진 ‘바람’으로 평가절하한다. 한국정치의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는 출발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쪽도 있다. 아직 결론 짓기는 이르다.
어느 쪽이든 이 대표 현상이 한국정치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한국의 정당과 정치를 정상으로 돌려달라는 요구와 기대이다. 이 대표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그는 벌써 10년째 여의도 정치권을 누빈다. 그것도 정치인으로서 첫 자리가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었다. 26살 때였다. 그는 총선에서 3번 낙선했다. 이 대표는 한국정치 안에서 단련되고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대화’이다. 그는 생각이 다른 사람과 토론할 줄 안다. 설득할 줄 안다. 직설적이지만 상대를 존중한다. 여기서 이 대표에 대한 기대가 생겼다.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불통’이 고쳐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이 대표가 쏘아 올린 한국정치 변화의 희망과 윤 전 총장의 출마 선언문 사이의 간극이 유난히 커 보인다. 이 대표에게 거는 정치혁신의 기대는 세대교체가 아니라 정치의 질적 변화이다. 오로지 권력잡기에만 혈안이 돼 상대를 향한 정치보복으로 점철된 한국 정치에 종지부를 찍어달라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의 출마선언문에 그런 기대와 요구를 담은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는 강단과 결단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따뜻함과 희생이 지도력을 발휘한다. 이래저래 이 대표의 짐도 늘어나는 것 같다. 국민도 편치만은 않다.
서울본부장 kksho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