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의지하는 것은 이성에 눈을 감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사상가이자 건국의 아버지인 벤저민 프랭클린이 남긴 말이다. 청춘이 감각에 의존하는 이미지의 추상은 원로가 깊은 침묵에서 바라보는 심상과는 그 결이 다르다. 흥미(interest)는 자신에게 이롭고 자주적인 관심의 상태이다. 그러나 흥분(excite)은 자신이 누군가에게서 휘둘릴 수도 있는 마음의 상태이다. 감각이나 흥분은 예술적 착상에 아주 획기적인 순간을 주기도 하지만, 지나고 나면 인간의 이성에 후회를 남기는 얼룩의 순간도 남긴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안에서 자기 방에서 홀로 이런 저런 투자를 시작한 국민이 참 많아졌다. 가상자산도 그중 하나다. 요즘 어린이도 한다니 세상 참 빠르게 변한다.
우리나라가 공업 기반의 산업사회로 발달하고, 여러 기업들이 다투어 성장하는 동안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사실 금융시장으로 대접받기보다는 시장경제의 제도적인 사회 도구로 작동한 측면이 컸다. 지금은 다 지난 일이지만, 1980년대 만해도 증권시장을 금융권으로 잘 인정해주지도 않았고, 심지어 증권회사에 다니면 어디 가서 결혼 얘기도 꺼내기 힘든 시절까지 있었다.
우리 국민은 사실 체질적으로 주식 투자가 그렇게 잘 어울린다고 말하기 어렵다. 우선 불확실성이 대전제인 주식시장은 매사에 안전하고 확실한 것에 선호경향을 오래 지녀온 우리 국민성에 비추어 그리 좋아할 투자 대상은 아닐 수 있다. 그래서 다른 나라보다 우리 주식시장에서는 매수자금이 크고, 참가자가 똑똑하다는 다른 투자자의 행동 소식에 의존성이 강하고, 실제의 매수 매도의 수량과 배후의 세력 파악에 아주 민감한 편이다.
그 예로 외국인 투자가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사고파는 수량을 나타내는 수급 관련 투자지표에 민감해 한다. 냉정히 말하면 주식 투자는 타인의 행동을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 모두가 투자한 시점도 다르지만 매도할 시점도 다르다. 주식을 같이 사고 같이 팔면 취미생활이나 단체봉사 같은 일에는 적합하지만,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불투명하고 불특정한 시장에서는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발달한 금융투자시장이 우리나라에 온 것은 이제 60년이 조금 지나고 있다, 이제 투자자 누군가의 나이가 60대라 치면 한 세대가 오롯이 막 지나가는 중이다. 그만큼 일천하고 뿌리가 얕다.
개방과 경쟁이란 단어가 주식 투자와 시장경제를 재단할 수 있는 표현의 하나인데, 우리나라 투자자들은 누군가와의 정보 교류와 누군가와의 행동 통일을 자신도 모르게 한다. 마치 투표를 혼자 하듯이 투자도 혼자 하는 것이 정답이다. 만일 그럴 준비가 덜 되어 있으면 투자는 나중에 해야 한다. 투표에 왜 나이를 두고 있겠는가.
제레미 시걸이란 미국의 경영학자는 주식은 오래 보유하면 부동산이나 예금보다 어느 정도의 초과 수익이 있을 수 있는데, 이는 위험의 보상(risk premium)이라고 했다. 우리나라가 주로 많이 쓰는 프리미엄은 위험의 대가이다. 신규 아파트 청약도 남보다 선 분양에 참여한 위험을 진 대가로 흔히 ‘피’(프리미엄의 시쳇말)가 붙는다.
부산에도 아파트 가격이 코로나19 와중에 많은 변화가 있다. 미래의 도시 부산이 갖는 기대감이 작동한다면 그동안 서울과의 비교로 보아 전혀 생경한 일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미래는 거저 오는 것이 아니다. 우선 미래는 제법 긴 시간이 흘러야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무언가를 미리 넣어 두어야 하고, 일정한 굴곡을 거쳐야만 그 결과가 나온다.
청년들이 미래 투자에 유리한 입장을 지닌 것이 있다면 ‘기다리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지만, 당장의 돈이 필요해서 투자에 관심을 보인다면 곧잘 흥분에 취약한 나이란 점을 꼭 명심해야 한다. 청춘은 ‘성급한 자신감’의 다른 말이 아니라 ‘소망이 있는 좋은 날’의 다른 말이다. 부산의 미래도 아직은 청춘의 시간이다.
엄길청 미래경영학자·전 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