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하게 ‘미술관 기행’이랄 것 까지야 없지만, 과거 여행 담당기자 시절 국내외 어디를 가든 짬을 내 미술관에 들르곤 했다. 그 와중에 세월이 가도 잊을 수 없는 2개의 ‘장면’이 있다.
첫 번째는 10년 전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고흐의 ‘자화상’ 등 명작이 즐비하지만 발길이 오래 머문 작품은 따로 있었다. 오귀스트 로댕 필생의 대작인 ‘지옥의 문’ 원작. 규모부터 압도적이다. 가로 400㎝, 높이 635㎝, 너비 85㎝. 로댕이 프랑스 정부로부터 장식미술관 출입문 제작을 의뢰받아 만들었는데 건립 계획 취소로 그의 생전엔 석고로만 남았다고 했다. 그리고 로댕 사후 7개의 청동 주물 작품이 제작됐다는 설명을 들을 즈음, 주변의 어느 서울서 온 일가족 대화가 귀를 때렸다. “7개 중 하나가 서울에 있지. 얘들아, 삼성생명 본관 로댕갤러리에서 본 것 기억나? 로댕의 또 다른 명작인 ‘칼레의 시민’도 봤잖아. 삼성컬렉션이 어마어마하지.”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지방사람’이 느낀 충격과 낭패감이야 말해 뭐할까.
두 번째는 일본의 ‘예술의 섬’ 나오시마. 안도 다다오가 건립한 ‘지추(地中)미술관’에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등 작품을 감상한 후 인근 해변을 지나던 중 방파제 끝에 있는 노란색 덩어리 하나가 눈에 들었다.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 한국의 여느 해변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바다가 ‘노란 호박’ 한 덩이가 놓인 풍경으로 인해 세상에 하나 뿐인 ‘나오시마의 바다’가 된 것이다. 이 풍경을 보려고 지구촌 사람들이 달려오게 하는 힘이야말로 문화 예술이 지역과 결합돼 만들어낸 시너지 효과였다.
‘이건희 컬렉션’ 국가 기증 이후 전시 미술관 유치 경쟁이 뜨겁다. 이 시점에 개인 기억을 소환한 이유는 분명하다. 이건희 미술관 부산행을 주장한 박형준 시장이 쏘아 올린 ‘문화 분권을 향한 작은 공’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박 시장은 최근에도 SNS를 통해 고 이건희 회장의 ‘문화보국론’을 강조했다. 2300여 문화예술 시설 중 36%와 미술관 200여 개 중 50%가 수도권에 있다며 미술관 입지를 공모로 선정하자고 주장했다. 최적지로는 오페라하우스와 시너지를 극대화 할 부산 북항을 제안했다. 물론 무조건 부산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욕심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공모를 한다면 서울과 수도권은 배제하는 것이 옳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지옥의 문’ 7개 작품 중 하나가 국내에 있는지도 모르는 문화소외자 ‘지방인’들도 문화예술을 골고루 향유할 수 있다. 그 길 만이 ‘문화보국’의 옳은 방향이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