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중국 푸젠성 샤먼에서 정의용 외교장관과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직접 만나 한중외교장관회담을 했다. 우리 외교장관이 단독으로 중국을 방문한 것도 오래된 일이거니와 코로나 와중에 중국을 방문하여 대면 회담을 개최했다는 그 자체가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한반도 주변의 동북아 정세가 엄혹한 타이밍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한층 엄중해진다.
우선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 들어와 한층 격화되고 있는 미중갈등의 와중이다.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일방주의노선을 걸었던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고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섬에 따라 미중갈등이 완화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이념과 가치를 내세우고 동맹강화책을 통해 중국을 노골적으로 압박한 나머지 미중관계는 전에 없는 갈등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달 18일 미국 알래스카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회담은 이런 갈등양상을 여과 없이 세계 만방에 보여주었다. 미국과 중국의 대표단은 회담 모두에 1시간 동안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격돌하였다.
미국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모두 발언에서 홍콩 대만 신장위구르와 관련된 인권 및 안보문제를 거론하며 중국이 규범에 기초한 질서를 위협한다고 했다. 미 정부는 이 회담을 목전에 두고 홍콩 관련 중국 관료들에 대한 제재 발표를 했다. 중국 측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은 미국의 인권이나 챙기라면서 격하게 반발했다. 두 강대국이 상대를 향해 넘어서는 안 될 레드라인을 넘는 듯한 언행을 보여주었다는 점에 심각성이 있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알래스카회담 바로 직전에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과 함께 방한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을 뿐만 아니라 우리 외교안보장관들과 여러 차례 회담을 개최했다.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강화 방향에 대해 상호 의견이 모아졌다. 이들은 서울에 오기 전에 일본 도쿄를 방문해 미일동맹의 공고함을 한껏 과시했을뿐더러 한·미·일협력 강화에 한목소리를 냈다. 한미간의 2+2회담에서도 한·미·일협력이 무척 강조되었다. 한·미·일 협력 강화에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문제는 중국이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해 탐탁치않은 입장을 보여왔다. 중국은 우리와 경제 유대가 깊고 북핵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반드시 협조를 구해야 하는 동반자다.
사정이 이렇기에 미중갈등이 격화되는 동북아 정세는 우리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 한국사회 내부의 분열을 조장하는 빌미가 될 수도 있고, 분단된 한반도의 분열도 심화시킬 소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반도는 말할 것 없고 동북아 지역 전체 안정과 공존에 위협이 되는 미중갈등을 피해야 마땅하다. 할 수 있다면 갈등과 파국의 길이 아니라 공존의 길을 닦는데 건설적 역할을 모색하는 것이 명분에도 맞고 실리도 얻게 된다.
정세의 엄중함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서도 발견된다. 북한은 지난달 21일 순항미사일 2기를 발사한 데 연이어 25일에는 신형탄도미사일 2기를 발사했다. 한미연합훈련이 끝난 시점이기도 하고 미국 바이든행정부의 대북정책 검토가 끝나가는 시점이기도 하다. 북한은 8차 당대회에서 ‘국가방위력 강화’를 천명한 바 있다. 그 방향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조치가 미국에서 나와야 하고 우리와 중국 일본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외교를 벌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장거리 미사일뿐만 아니라 핵도발도 예견된다.
미중갈등의 와중에 동북아 공존의 오솔길이라도 내야 한다는 생각은 바로 이 같은 절박함에서 나온다. 샤먼에서 있었던 한중외교장관회담에서 왕이 부장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이라는 우리 정부의 목표에 지지의사를 밝히고 중국의 ‘건설적 역할’에 대한 요청에 협력하겠다 했다. 한편 서울에 왔던 블링컨 미국무장관이 2+2회의 이후 “중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하도록 설득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알래스카 미중회담에서도 북한문제에 대한 공조 가능성이 논의되었다고 한다.
미중갈등과 북핵문제는 공히 동북아 공존에 위협요인이다. 그전에 우리의 안보에 위협일뿐만 아니라 한반도 안정을 해친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란 말도 있듯이 발상을 새롭게 하여 북핵문제를 고리로 삼아 미중협력을 견인해낸다면 어떨까. 그 결과 미중갈등이 완화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내는 한편 한반도의 비핵평화 프로세스를 가동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이는 한국이 미중갈등의 중간에 치여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처지가 아니라, 미중협력의 공간에서 우리 외교의 딜레마를 극복하면서 국익을 도모하고 크게는 동북아 공존의 오솔길을 닦는 외교를 구사하는 일 아니겠는가.
경남대 석좌교수·전 주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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