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객관적 인식을 위해선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중심을 보려면 중심에서 벗어나 적절한 가시거리를 확보해야 하는 이치와 같다.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는 이를 ‘소외효과(alienation effect)’라고 했다. 무대 위의 사건이나 일상을 거리두기로 낯설게 만들어 비판적으로 인식한다는 얘기다. 그 인식의 깊이는 시간과 비례한다. 바라보는 시간이 많을수록 사건의 실체가 명료해진다. 거리가 술독이라면, 시간은 담근 술을 발효시키는 누룩이다.
우리 현대사를 다룬 주요 예술 작품에서 그 사례를 목격한다. 최인훈의 중편소설 ‘광장’이 그 하나다. 남북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분단 현실에 대한 객관적 성찰의 본보기를 제시한 그 소설이 탄생한 건 6·25전쟁 휴전 후 7년이 흐른 1960년이다. 분단 문제에 대한 성찰의 너비와 깊이를 제목 만큼 확대·심화한 이병주의 대하소설 ‘지리산’도 중요 작품이다. 지리산이 나오기까지는 광장 출간으로부터 18년이 더 소요됐으니, 분단문학은 민족의 시련을 기억하고자 시간에 새긴 비망록인 셈이다.
IMF 외환위기(1997년)에 대한 성찰 역시 다르지 않다. 정부와 대기업, 은행의 잘못으로 환란이 초래됐다는 게 경제계의 정설이었지만, 이를 입체적으로 형상화한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이 만들어진 건 환란이 발생한지 무려 21년이 경과한 2018년이었다. “왜 ‘조물주 위에 건물주’인 세상이 됐는지, 왜 ‘갑질’이 난무하는 사회가 됐는지, ‘개천에서 용 나는’ 건 왜 이제 불가능한지 그 유래를 보여주는 영화”라는 평론이 문제의 근원적 인식을 위한 시간과의 싸움을 증언한다.
코로나19의 숱한 상처 또한 성찰을 기다리고 있다.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대기업보다 소상공인에게 더 많은 희생을 안겨주는 ‘위기의 양극화’가 대표적인 예다. 비싼 학비를 내고서‘캠퍼스 낭만’이 뭔지도 모른 채 모니터 속에 갇혀 지내는 20, 21년 ‘코로나 학번’ 대학생의 비극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이런 현실을 반영하려는 듯 ‘마스크 쓴 드라마’가 하나 둘 방송가에 선보여 눈길을 끈다. 마스크를 쓰고 통곡하는 장례식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바질과 치즈는 사회적 거리두기 중”이라는 등 익살스러운 대사도 쏟아진다. ‘마스크 이후’의 세상을 담은 소설이 올해 현대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다른 예술 장르의 형상화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모두가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다. 그 자산들이 모여 ‘포스트 코로나’의 지혜를 길어올리는 튼실한 두레박이 되길 바란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