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통상 변화를 싫어한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더 그렇다. ‘보수’라는 게 말 그대로 ‘보전하여 지킴’이고 ‘새로운 생활이나 변화에 반대하고 해 오던 방식을 옹호하며 유지하려는 것’이라면, 알게 모르게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 다들 삶에 지쳐있는 탓이다. 지금의 일상을 겨우 유지하는 일만 해도 힘에 부치는데 변화까지 있으면 신경 써서 적응하고 맞춰야 한다. 이게 버겁고 두려운 거다.
나 역시 젊었을 적엔 대학에 새로운 실험기기가 들어오면 며칠씩 매달려 설치하고 조작법을 정렬하던 얼리 어답터였지만 이제는 휴대폰 사용법 익히는 일도 부쳐 단순 통화에다 사진도 자동기능 버튼만 누를 뿐이다. 비싼 첨단기기를 왕따시키고 있는 꼴이다. 막상 어떤 기능에 맞닥뜨렸을 때는 설명서를 뒤지기보다는 주위 젊은이에게 묻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늘 하는 대로 습관적으로 행동하며 비판 없이 그저 살아서는 안 된다. 누군가 그랬다. 생각 없이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왜 그런가, 꼭 그래야 할까, 의문을 가지고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옳다고 판단하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더 나은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으레 그럴 것이라 여기지 않고 달리 생각해 보는 방식은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도 더 나은 방향을 잡는 기본이다.
결혼식에 초대받아 가보면 혼주가 아는 사람은 모두 다 부른 듯싶다. 나를 꼭 오라 해서 갔지만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을 맞아야 하니까 내겐 겨우 눈웃음만 짓고는 그만이다. 그럼 나는 결혼식장의 꽃병이고 의자처럼 그곳에 잠시 갖춰져야 하는 장식품 역인가? 연극 대본의 사내2이고 행인5에 버금갈 뿐인가? 난리 북새통 속에서 밥을 얻어먹으면서 내내 잡친 기분만 한가득이다. 이건 아니다.
모신 사람들을 존중하지 못하는 이런 결혼식은 글렀다. 소중한 사람 몇몇만 초대해서 결혼식을 치르고 함께 즐기는 게 좋지 않은가? 대부분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결혼할 사람의 부모가 부조금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다고 답한다. 그러면 박제된 결혼식이 내일도 모레도 계속될 것이다.
두 장례식에 갔다. ㄱ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형편이 어려워서 많은 사람들이 부조를 해야 치를 수 있을 거라 걱정이 됐다. 그러나 ㄴ씨는 부자여서 돈을 보태지 않아도 얼마든지 호화롭게 장모의 장례를 치를 수 있다. 내가 마주한 현실에서 ㄱ씨 장례식장은 찾는 사람도 많지 않고 적은 액수로 부조를 하며 그래도 된다고 말한다. ㄴ씨의 장례식장에는 화환과 조문객들로 줄을 선다. 적은 돈으로 부조했다간 욕 듣는다며 큰돈을 봉투에 넣는다. 무언가 잘못됐다.
내가 막 군인이 되었을 때, 내 성향이 전혀 군대스럽지 않아 많이 맞았다. 심지어 ‘구타 금지’, ‘만일 구타 당했을 때에는 여기로 신고하시오’라고 쓴 간판 밑에서도 맞았다.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 같은 젊은이들이 낯설고 힘든 곳에서 고생하면서 서로 때리고 맞아야 하는가? 돕고 보살피면서 마음 맞춰 살아도 힘든 판에. 사회에서 험한 일을 하며 억울하게 살다 온 사람일수록 왼팔에 찬 완장이 버거워 더 날뛰고 구타를 해댔다. 나이와 깨달음이랑 상관없이 며칠 더 일찍 군대에 왔다는 이유로 거들먹거리는 규칙을 난 이해할 수 없었다. 간부들은 사병들끼리 두들겨 패면서 위계질서 다잡기를 은근히 바랬다. 그래야 통치하기 편하니까.
나는 절대 후임들을 모아 때리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내 바로 다음 후임 녀석은 군율을 빙자해서 수시로 불러모으고 뒤늦게 들어온 군인들을 몰래 야비하게 족쳤다. 오죽했으면 별명이 ‘독사’였을까? 그 짓을 고참병들이 은근히 사주하고 있었다. 나 혼자 후임들을 패지 않았다고 해서 그 부대가 달라졌을까? 아마 다들 나를 호구로 여기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나를 아무도 곱씹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헛짓이 아니라고 우긴다.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물길이 생기고 내가 되었다가 큰 강을 이뤄 결국 바다를 채운다. 눈을 뜨고 깨어있어야 한다. 잘못된 것, 부당한 것을 깨닫고 같이 바꿔 나가야만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전 생명그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