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부산에 놀러온 싱가포르 지인을 데리고 자갈치시장에서 생선회를 먹은 적이 있다. 친구는 한국식으로 회를 쌈에 싸먹고는 “와! 이게 무슨 풀이냐. 영어로는 뭐라 하느냐”며 정작 생선보다 깻잎을 더 좋아했다. 한국 사람이 태국 인도 등의 현지 음식에 거부감을 느끼는 건 대부분 조리에 사용된 향신료나 허브 때문이다. 한국인들도 호불호가 갈리는 깻잎을 외국인이 금방 받아들이는 게 다소 의외이면서도 반가웠다. 깻잎 못지 않게 향이 강한 채소가 미나리다.
당나라 시인 왕유가 ‘소나무나 매화가 아버지라면 미나리는 어머니’라 읊었을 정도로 옛날부터 미나리는 채소의 으뜸이었다. 영남엔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은 미나리 산지가 많다. 양산 원동과 삼수마을 미나리, 하동의 청학 미나리, 김해 용지봉 미나리, 의령 가례 밭미나리 등을 높이 친다. 청정 미나리의 대명사인 청도 한재미나리도 빠질 수 없다. 매년 3월 수확철이면 이들 지역에서 축제가 열린다. 불판에 삼겹살을 구워 갓 걷어 올린 미나리를 돌돌 말아 먹는 재미가 일품이다. 미나리와 삼겹살의 찰떡궁합을 이런 축제가 아니었으면 몰랐으리라. 봄이 선사하는 특별잔치를 올해도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못 누려 아쉬울 뿐이다.
한국 가족의 미국 정착기를 그린 영화 ‘미나리’가 이틀 전 국내에서 개봉됐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로 어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관객점유율은 50%가 넘는다고 한다. 북미에서는 3주째임에도 극장수가 계속 늘어간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미나리’는 골든글로브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비롯해 주요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77관왕을 기록 중이다. ‘기생충’에 이어 2년 연속 한국 영화의 아카데미 수상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외국 공항에 내리면 나라마다 독특한 향이 있다. 한국 땅을 처음 밟을 때 외국인들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고 들었다. 그들이 이맘때 온다면 쑥이나 냉이 달래 미나리 등이 뿜어내는 향기를 맡을 것이다. 추운 겨울을 견뎌낸 때문인지 알싸하면서도 향긋한 향과 식감은 시련에도 꿋꿋이 일어서는 한국인의 심성과 통하는 듯하다. 영화 ‘미나리’에선 미국에서 나고 자란 손자 데이빗이 한국에서 갓 건너온 외할머니 순자를 “한국 냄새가 난다”며 처음엔 밀어낸다. 데이빗 가족과 순자의 이국 생활은 서로에게서 나는 체취의 혼합 혹은 적응의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기생충’ 덕분에 히트친 짜파구리처럼 어떤 땅에 심어도 파릇파릇 돋아나는 코리안 허브 미나리 맛을 세계인도 알아가길 기대한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