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완성하는 데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호기심 많고 적극적인 관심을 가진 관람객으로부터 전시장에서 종종 듣게 되는 질문이다.
이 질문 속에는 미술작품을 정량화해서 다양한 수치로 환산하여 다른 상품들과 비교하며 작품을 이해하려는 호기심 많고 용기 있는 관람객의 편리한 가치평가의 방법이 내재되어 있다.
작품 크기에 따라 투입된 재료비와 시간당 인건비를 합산하는 원가계산식을 미술작품에 대입시켜도 되는지 사뭇 놀라 당황한 그 관람객의 지인은 옆에서 더 이상의 질문을 못하게 하는 해프닝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 작품 얼마인가요?”라고 묻기라도 하면 마치 미술작품과 작가에 대한 불경한 태도이자 심각한 결례라도 되는 것처럼 만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원가계산 방법은 르네상스 시대에 시스티나예배당 천정화를 그린 미켈란젤로와 교황사이에서도 있었고 르네상스 예술을 적극 후원했던 메디치 가문은 작품을 주문제작하는 방식까지도 활용하여 당대 최고의 기술자와 예술가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벽화, 조각상, 건축물 등 다양한 예술품들을 창작하게 하였고 충분한 비용을 지급했다. 당시 푸른색의 안료는 금보다 비싼 재료여서 실수하지 않는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는 예술가들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원가계산과 더불어 예술에 대한 가치평가까지 더하여 예술작품들은 교환되고 소비되었다. 메디치는 르네상스의 큰손 컬렉터로서 당대 최고의 작품수집가였다.
그리 오래지 않은 시기에 ‘열정페이’라는 용어가 유독 문화예술계에서 많이 들렸다. 취업난이 만들어낸 사회초년생 청년들의 열정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나쁜 행태는 문화예술계에서 더욱 심각했다.
공연 경력이 없으니 기회를 주겠다고, 그림 많으니까 빈 벽에 걸어두자고 등등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예술을 교환하기보다는 무상으로 소비하기를 바라는 태도는 여전히 도처에서 확인되고 있다. 셈에 약한 예술가들의 너그러움(?)도 일조하는 면이 없진 않다. 저 멀리 아득히 신비로운 아우라의 후광은 예술을 일상으로부터 멀리 떼어놓아 권력화, 도구화하여 예술을 독점하고 지배하려는 장치였으나 지역에서 일상의 예술을 향유하고자 하는 예술 대중화의 이 시대에는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는 낡은 개념이다.
예술에 대한 존중과 예술의 신성화는 구별되어야 한다. 예술이 일상 속에서 대중화 되는 것은 예술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소비되어 선순환의 예술생태계를 지속하는 것이다.
예술의 대중화는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여 가능하고 적당한 소비를 동반하여 일상 속에서 향유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 일상 속의 예술은 박물관에 모셔두기보다는 나의 존중과 함께 지불된 비용으로 재미를 교환하는 것이다. 이 재미는 나에게만 통용될 수 있는 유일하고 독특한 아우라를 가질 수도 있다. 개인의 취향이라는 것이 참으로 다양하니까.
코로나로 전시회 개막식에서 오색리본을 자르던 행사풍경도 사라진 지금, 문득 아주 예전에 오색리본 수급이 원활하지 않던 그 시절, 지역의 작은 소도시의 전람회에서는 새끼줄에 꽃을 꽂아 전시개막 커팅식을 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생명탄생을 알리는 금줄의 형식을 빌어서 새로운 창작품의 발표를 축하하며 꽃이 달린 새끼줄을 자르는 영광을 받은 내빈은 작품을 우선하여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가졌다 하니 자원이 풍족하지 못한 시대임에도 예술에 대한 기품 있는 가치평가가 있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예술가에 대한 존중과 정당한 가치를 지불하여 선순환의 예술생태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문화예술을 일상 속에서 향유하는 것이다. 내가 지불할 수 있는 시간과 비용을 스스로 계산하여 나만의 가치평가의 기준을 만들어 내가 누릴 수 있는 문화예술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는 재미, 다시 돌아오지 않는 오늘, 이 순간의 재미를 나에게 먼저 주기로 했다. 새로운 작품은 항상 나를 설레게 하는데 어떤 것을 먼저 선택할까하는 이 행복한 고민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뒤 해결될 것이라 기대한다.
올아트22C 문화기획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