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를 가장 뜨겁게 달군 이슈는 쿠팡의 뉴욕 증시 상장 추진이었다. 쿠팡의 뉴욕행을 두고 ‘미국 기업이 미국 증시로 간 것이다’ ‘차등의결권 때문에 미국으로 떠났다’ ‘국내 상장보다 미국 상장이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같은 여러 가지 해석이 잇따랐다.
가장 뜨거운 논쟁은 차등의결권(복수의결권) 도입 문제다. 차등의결권은 ‘1주 1표’의 의결권을 가진 보통주 외에도 ‘1주 2표’ ‘1주 10표’ 등 다수의 의결권을 가진 주식을 허용하는 것으로, 아직 국내에서는 도입되지 않았다. 하지만 쿠팡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서 창업자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에게 차등의결권을 부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심이 집중됐다.
누적적자가 4조5000억 원에 달하는 쿠팡이 국내 상장보다는 뉴욕 상장이 더 수월할 것으로 판단했다는 해석도 있다. 쿠팡이 미국 투자은행(IB)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기업가치(EV)는 500억 달러(55조400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EV는 기업이 일정 기간 미래에 벌어들일 평균 수익에서 평균 자본비용(이자율)만큼 할인해 산정한다. 미래가치를 두고 미국 증시에서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겠다는 것이다.
쿠팡의 뉴욕행으로 인해 차등의결권 관련 입법이 재추진되고, 그 과정에서 ‘데스밸리(창업 후 3년쯤 지나 자금압박을 받기 시작하는 시기)’를 힘겹게 버텨 회사를 지켜 온 기업 창업자에게 차등의결권을 부여하는 문제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스타트업이 데스밸리를 무사히 넘긴 것도 창업자가 차등의결권을 활용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에서 차등의결권 도입에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재벌기업 위주로 성장한 국내 산업 구도의 특성에도 있다. 유가증권 시장 시가총액 상위 5개 기업 중 스타트업에서 출발한 곳은 네이버가 유일하다.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차등의결권 허용을 담은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 개정법률안’에 대해 재벌 세습을 제도화한다며 법안을 폐기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스타트업에서 출발해 미국 시총 상위 5개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알파벳(구글), 페이스북 등 기업과 국내 기업 환경이 다르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쿠팡의 뉴욕행을 계기로 기업의 재무제표보다는 기술력과 미래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국내에도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지금 당장 이익을 실현하지는 못하지만 장래 성장가능성만으로 뉴욕증시 상장에 성공한 테슬라의 사례에서 착안, 미래 성장가치가 있는 스타트업을 상장시켜주는 ‘테슬라 상장’도 국내에 2017년에 도입됐지만 시가총액,매출액, 당기순이익 등 충족해야 하는 요건이 있다.
얼마전 종영한 드라마 ‘스타트업’을 보면서 현실과 괴리감을 느꼈다는 스타트업 기업인들도 많다. 드라마에서처럼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아 성공하기는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혁신 기술과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다가 문을 닫은 스타트업이 정확한 통계수치로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정책자금을 활용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 자금이 대부분 대출 형태인 만큼 현 상황에서 이익을 내지못하고 있는 기업이 담보를 통해 대출을 받는 것은 여전히 까다롭다.
다시 차등의결권 문제로 돌아오면 자금 조달이 절실한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투자자와의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갑을관계가 될 수 밖에 없다. 시민단체에서 차등의결권 도입을 반대하고 있지만,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차등의결권이 투자자들의 과도한 요구로부터 경영권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차등의결권 도입 관련 입법을 반대하는 것이 능사인지, 스타트업이 성장하고 있는 현실에서 투자자와 스타트업 사이 관계 재정립을 위한 또 다른 제도적 장치를 만들 것인지도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김태경 서울본부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