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K-좀비 사극’ 열풍을 일으킨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여주인공 ‘서비(배두나 분)’의 직업은 ‘의녀(醫女)’다. 그녀는 감염병에 맞서 환자 간호부터 진맥, 침 놓기 등에 이르기까지 간호사와 의사가 하는 일을 모두 수행한다. 간호사의 시초를 의녀에서 찾는 시각에선 고개를 갸웃할 만하다. 하지만 실제로 의녀는 간호사와 여자 의사를 합친 개념이었다.
의녀 제도의 도입 연원을 살펴보면 명확하다. 태종실록 11권(즉위 6년, 1406년 3월 16일 자)을 보자. 당시 궁중 및 사대부 여인들은 남자 의원에게 몸 맡기기를 꺼려했다. 그로 인해 쉽게 목숨을 잃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에 10~15세 여자 관비(官婢) 중 10명을 선발해 제생원(濟生院)에서 침술과 진맥 등을 가르쳤다. 세종 때는 3년마다 150명씩 선발해 지방과 일반 백성에게도 보급했다. 교육기간은 6년이다. 성종 9년(1478)에는 의녀를 내의, 간병의, 초학의 등 3단계로 나눴다. 내의는 최고 단계의 의녀다. 주로 왕족을 진단하고 치료했다. 중종 때 30년가량 재임한 ‘대장금’이 유명하다. 간병의는 간호사와 일반 의사를 합친 개념이고, 초학의는 초반 3년 과정을 통과한 이들이다. 진단 및 처방권이 없는 현 간호사와 비슷하다.
20일로 코로나19 국내 환자 발생 1년째를 맞으며 간호사들을 향해 ‘영웅’이라고 칭송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정작 간호사들은 “체력과 정신력이 고갈된 ‘번 아웃’ 상태”라며 피로감을 호소한다. ‘말로만 영웅’이 아니라 이들의 위상 제고를 위한 제도 개혁이야말로 진정한 예우라는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는다. 미국의 NP(Nurse Practitioner·석사전문간호사)처럼 법으로 진단과 처방권까지 부여된 실질적인 전문간호사 제도의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다.
미국에선 4년 간호대학 수료와 임상경험을 갖춘 뒤 석사학위를 따고 시험을 통과하면 NP가 된다. 이들은 병원에서 전공의(레지던트)와 동등한 위상을 갖는다. 국내에도 전문간호사 칭호는 있지만, 법으로 보장된 권한은 일반 간호사와 같다. 의사 보조 역할에 머무는 것이다. 13만 간호사의 염원이지만, 의사 단체의 저항이 거셀 수 있다. 미국의 경우도 1990년대 NP 도입 때 의사들의 강한 저항이 있었다. 그러나 간호사들의 목소리와 고령화 사회에 따른 시대적 요구가 더 커지자 결국 통했다. 조선시대 의녀 중 기초단계인 초학의도 노력하면 간병의, 내의까지 상승할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수백 년 전 의녀 제도보다 못하다는 ‘진단’을 받아서야 될 일인가.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