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공공임대나 살라고?” “니가 가라 공공임대”, 이는 유승민 전 의원이 12월 1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마지막 문장이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은 경기도 화성시 LH 임대주택 100만 호 기념단지를 방문했다. 여기서 문 대통령은 ‘다양하고 질 좋은 공공임대주택으로 중산층까지 혜택을 넓혀 누구나 집을 소유하지 않고도 충분한 주거를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해석하자면, 양질의 안정적 주거가 배타적 ‘소유권’이 아니라 연대적·공유적 ‘사용권’에 의해서도 보장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유 전 의원은 거친 표현으로 문재인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비판했을까. 정치적 지지를 의식한 발언이겠지만 시장주의에 대한 그의 소신도 한몫했을 것이다. 양자 간에 주택·주거 정책의 관점이 이렇게 다르다.
2019년 자기 소유 주택에 사는 1인 가구는 30.6%에 불과했고, 전체 가구 기준으로는 58%였다. 역대 정부에서 자가 중심 주거 정책을 꾸준히 펼쳤지만, 전체 가구 중 자가의 비율은 1980년 59%에서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자리를 맴돈다. 집 없는 가구의 대다수는 임대주택에서 살고 있는데, 문제는 주거의 불안정성과 낮은 질적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전 의원과 보수진영은 ‘소유권’ 중심의 경쟁적 시장주의 방식을 옹호하며, 민간 중심의 공급 확대와 대대적인 규제 완화를 요구한다. 그런데 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모두에게 내 집 마련’이라는 듣기 좋은 명분으로 치장된 ‘소유권’ 중심의 주거 정책은 생산량을 무한정 늘릴 수 없는 토지의 속성으로 인해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 전 의원과 보수진영이 요구하는 소유권 중심의 시장주의 처방은 집값과 주거 불안을 가중시킬 게 분명하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기존 시장주의 정책 관성에 따른 획일적 관점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중산층을 포함해 누구라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다양하고 질 좋은 공공임대주택을 선진 복지국가 수준으로 확충하려는 시도가 그것인데, 이는 주택에 대한 관점을 사적 소유권뿐만 아니라 공공 소유에 기반을 둔 연대적·공유적 사용권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미래지향적이고 옳은 방향이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 내정자가 주장했던 공공자가주택(토지임대부, 환매조건부)도 공공의 소유·관리에 기반을 두고 ‘사용권’을 보장하는 유형인데, 공공임대주택이 가진 공유 성격을 응용·확장한 것이므로 공유경제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토지는 중세시대만 해도 공유경제에 속했다. 봉건 영지에서 구성원 모두는 경작지·목초지·숲에 대한 사용권을 공유했다. 16세에서 18세기 사이에 인클로저(울타리치기)가 진행되면서 유럽 농촌에서 공유지의 주민은 길거리로 내몰렸고, 관습적·연대적 사용권의 자리를 배타적·사적 소유권이 차지하고 말았다. 이로써 공유경제는 사라지고 자유경쟁 시장주의로 대체됐다. 그럼에도 유럽 복지국가들은 주택·주거 분야에서 공유경제를 제도적으로 확보했다. 사적 소유권에 기반을 둔 주택뿐만 아니라 정부·공공기관·협동조합 등의 공공 소유에 기반을 둔 양질의 공공주택·사회주택을 소유·임대하는 방식으로 사용권을 보장한다. 덕분에 선진 복지국가에서 집은 투자·투기의 대상이 아니며 보편적·안정적 주거 복지의 공간이 됐다.
공유경제에 대한 두 가지 오해가 존재한다. 하나는 공유경제 영역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공유 목초지의 비극이 그것인데, 주민이 앞 다투어 가축을 풀어놓으면 공유지가 황폐화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시장주의자들은 공유지를 매각해 사적 소유로 전환하라고 권고한다. 민영화 논리인데, 옳지 않다. 공유 목초지나 공동 어장 같은 자원은 공동체가 일정한 규칙을 통해 자체적으로 관리·감독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9년 10월, 엘리너 오스트롬은 여성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노벨상 선정위원회는 그녀의 저서 ‘공유의 비극을 넘어’가 “공유자원은 제대로 관리될 수 없다는 전통적 견해를 넘어 인류가 ‘공유의 비극’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실천적 해법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우리는 유럽 복지국가들이 주거 정책에서 실천했던 공유의 경험을 배우고 협동조합 등 공유경제의 영역을 제도적으로 확장하는 게 옳을 것이다.
공유경제에 대한 또 하나의 오해는 4차 산업혁명의 초연결성(Hyper-connectivity) 덕분에 누구나 네트워크에 접속해 필요 자원을 사용할 수 있으므로 기존 ‘소유권’ 중심 자본주의가 ‘접속권’ 중심의 공유경제로 이동한다는 주장이다. 오해다. 이것은 공유경제가 아니라 ‘플랫폼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우버, 에어비엔비, 배달 앱 등의 독점적 플랫폼 때문에 기존 택시 운전사, 숙박업 종사자, 식당 배달원은 안정적 일자리를 잃었다. 대신에 각종 플랫폼의 기술적 프레임과 거래 규칙에 속박된 저임금·불안정 노동자들만 넘쳐나고, 이로 인해 양극화·불평등은 심화된다. 그러므로 디지털 경제의 플랫폼 접속권을 공유경제의 사용권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공유경제의 본질은 ‘접속권’이 아니라 공동 소유에 기반을 둔 ‘사용권’이다.
독점적 플랫폼이 디지털 경제의 패권자로 등장했고, 불확실·불안정·불공정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바로 ‘우버화’가 초래한 ‘플랫폼 자본주의’다. 그러므로 장차 보편적 복지국가의 두 가지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는 정부가 공공성·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인데, 강력한 재정 능력으로 시장과 복지에 제도적으로 개입·규제해야 한다. 전 국민 고용보험 등 보편적 사회안전망을 확립하고, 투명·공정한 경제와 노동권 보장 체계를 강화하고, 직업훈련·평생교육으로 끊임없이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현장성·지역성을 기반으로 연대적 지역사회를 확립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 지방정부·공공기관·지역사회·협동조합 등이 소유하고 지역사회가 참여민주주의 방식으로 각종 재화를 생산·소비하는 미래형 지역경제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세계화에 대응하는 지역화 개념에 따른 공공부문·공유경제 등 연대적 영역의 확충은 장차 디지털 경제 시대를 맞는 올바른 ‘복지국가 전략’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