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현직 검찰총장으로는 처음으로 법무부의 감찰 대상이 됐다. 윤석열 몰아내기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것이다. 그 와중에 의미심장한 건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이다. 이달 초 한길리서치 조사에서 윤 총장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를 제치고 1위에 올랐을 때만 해도 추미애 장관과의 갈등이 빚은 반작용이란 시각이 있었다. 그런데 며칠 뒤 한국갤럽 조사에서 3위, 최근 윈지코리아컨설팅 조사에선 이 대표나 이 지사 누구와 맞붙어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조사기관이나 조사방식과 무관하게 윤 총장의 인기가 대선 후보 반열에 오른 유력 정치인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압도하는 흐름이 자리잡은 것이다.
윤 총장에 대한 지지세가 부산 울산 경남에서 강한 것도 주목된다. 매번 조사에서 전국 평균보다 3~5% 포인트 높다. 윤 총장은 굳이 따지면 충청도 사람이다. 순환근무지로 거쳐간 걸 빼면 이곳에 특별한 연고가 없다. 그런데도 지금까지의 부울경은 윤 총장에게 상당히 우호적이다. 대선에서 판세를 좌우할 핵심지역이지만 뚜렷한 주자가 안 보이는 최근 사정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윤 총장이 만약 대선 후보가 되더라도 야권의 흔쾌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명박 박근혜 두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고 범야권을 겨냥한 적폐수사를 이끈 그에게 뿌리 깊은 앙심이 있기 때문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야당 사람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여권에서 윤 총장을 어떻게 보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누르면 누를수록 윤석열은 튀어오른다는 점이다. 기성 정치인에 대한 국민 혐오감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여당만 봐도 이낙연 대표는 도지사와 총리를 거치면서 정치인 이미지가 약간 희석됐고, 이재명 지사는 기존 정치인과 궤적이 완연히 다른 사람이다. 성남시장 재선 후 도지사가 그의 공직 경력 전부다. 국회의원 한번 한 적 없다. 여당의 다선 의원 중 대선 주자급으로 거론되는 이가 있는가. 만약 이 지사가 여권 후보로 최종 결정되면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국회의원 이력 없는 대선 후보가 된다. 정치 경력이 지지율 높이는데 도움 안 되기는 야권도 마찬가지다.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김태호 등 자칭타칭 주자를 모두 합해도 현재로서는 윤석열 한 사람의 지지율에 겨우 버금갈 정도다. 개인으로야 자질이 충분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도맷값으로 매도 당한다고 억울해할 수도 있겠지만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차가운 시선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성 정치인에 대한 실망이 ‘윤석열 현상’의 전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를 소환한 가장 큰 주체는 그 누구도 아닌 이 정부다.
시도 때도 없이 정의를 부르짖던 한 지식인은 자녀 입시와 일가의 재산 형성에 부정과 불공정을 총동원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정권과의 친분을 내세운 금융권 인사는 비리를 저지르고도 영전했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친구를 당선시키기 위해 지방선거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수천명의 투자자에게 2조 원 가까운 피해를 안긴 라임과 옵티머스 펀드 사기사건에는 정권 실세 이름이 끊임없이 오르내린다. 대통령의 최측근은 인터넷 여론 조작에 관여한 혐의로 1, 2심에서 실형을 받았다. 공정의 주재자이고 최종 판관인양 행세한 이 정권 아래 일어난 일이다. 정권이 바뀌면 공수만 교대될 뿐 내로남불이 연쇄되는 악순환의 청산이 정치인의 손으론 불가능하다고 보는 국민이 분명 존재한다. 그런 시각이 윤석열이라는 법률가에게 모아지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게다가 윤 총장에게는 스토리까지 있다. 9수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동기들보다 늦게 공직에 입문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을 맡았을 때 “수사 과정에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해 좌천된 후 정권 내내 한직을 떠돌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화려하게 부활했지만 이 정부와의 밀월도 오래 가지 않았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처신이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스타일은 그를 지지하든 거부하든 윤석열이라는 사람을 기억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현직 검찰총장이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건 분명 예사로운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대장부’니 ‘개혁’이니 운운하다가 어려울 때 동료 팽개치고 제일 먼저 달아난 정치인, 야당일 때와 여당일 때 말이 180도 다른 정치인, 자기 편과 자기 먹거리 지키려 범죄적 행각을 서슴지 않는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건 더 비정상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윤석열 현상’은 염치도 애국심도 없이 키재기 하는 도토리들만 가득한 한국 정치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정치 구조가 유지되는 한 이름만 바뀔 뿐 ‘윤석열 현상’은 제2, 제3의 버전으로 계속될 뿐이다.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