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화두는 경제 위기 극복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 침체를 이겨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 중에서도 지역 입장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지역균형 뉴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내용이다. 지난달 13일 2차 한국판 뉴딜 회의 때 “한국판 뉴딜의 성패를 걸고 지역균형 뉴딜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던 내용을 다시금 강조한 것이다. 취임 초 강했던 균형발전 의지가 상당히 퇴색했다는 지적을 불식하겠다는 뜻을 피력한 셈이다. 그간의 과정이야 어쨌든, 뒤늦게나마 균형발전에 추동력을 더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점은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도 뭔가 찜찜함은 남는다. 이는 ‘지역균형 뉴딜’이란 용어를 처음 접했을 당시의 생경함이 여전한 탓이다. ‘한국판 뉴딜’이란 말도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그나마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그러나 이후 그 내용에 추가된 ‘지역균형 뉴딜’이란 말은 선뜻 와 닿지 않았다. 지역의 여러 사업에 지원책을 펼쳐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의미겠으나 실체는 모호했다. 더 문제는 그 내용 상당수가 기존 정책을 잘 포장해 ‘지역균형’이란 이름을 내걸었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점이다. 그럴듯하게 네이밍만 했을 뿐 실속은 의문시된다는 이야기다. 기우였으면 좋겠지만 문 정부의 그간 행보를 보면 의구심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문 정부의 균형발전 의지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임기 말까지 별 성과를 보이지 못하는 현 상황이 이런 불신감을 초래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뒤늦게 시동을 걸었다는 정책 중 하나마저 뚜렷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갈 길은 바쁜데 딱히 내놓을 게 없으니 얼렁뚱땅 이름만 급조했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가뜩이나 ‘이미지 정치’ ‘이벤트 정치’에 치중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문 정부다. 새롭게 내놓은 ‘지역균형 뉴딜’ 정책에 굳이 토를 다는 이유도 다른 데 있지 않다. 이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현장을 자주 찾고 많은 이들과 직접 소통해 왔다. 때론 이런 행보가 ‘감동 정치’로 이어지기도 했다. 당선 직후인 2017년 5월엔 인천공항을 방문, 비정규직 노조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선포했다. 이는 인천공항 뿐 아니라 많은 국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한줄기 서광이나 마찬가지였다. 고질적인 국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신호탄으로 비칠 만도 했다.
3년 여가 흐른 지금은 어떤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삐걱거렸고 민간부문 상황은 더 악화됐다. 지난달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 8월 임금근로자의 36.3%가 비정규직이다. 문 정부 출범 직후 8월에 비해 3.4% 포인트 늘었다. 정부는 통계 조사 방식 변화로 비정규직이 늘었다고 했지만 대세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 이번 조사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월 임금 격차는 152만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문 대통령이 그토록 의욕을 보였고, 비정규직들이 환호했던 정책의 참담한 결과다. 인천공항을 직접 찾았던 ‘감동 정치’의 추억이 아스라하다. 실속 없이 포장만 잘 된 ‘이벤트’에 그친 꼴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탁현민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을 의전비서관으로 재발탁했다. 탁 비서관은 대통령 임기 초부터 주요 행사를 전담하며 상당수 이른바 ‘감동 이벤트’를 기획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 9월 문 대통령이 질병관리본부에서 승격한 충북 청주 질병관리청을 직접 찾아 정은경 초대 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것도 그 일환이지 싶다. 실제 탁 비서관은 그 뒤 페이스북을 통해 “권위를 낮출수록 권위가 더해지고 감동을 준다”고 밝힌 적이 있다. 대통령의 현장 임명식을 두고 일각에서 ‘보여주기 이벤트’라는 비판이 나온 데 대한 반박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 성공적 방역으로 승격한 청장에 힘을 싣는 행보를 나무랄 일은 아니다. 다만, 굳이 여기에 ‘감동’ 운운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감동을 주는 정치와 정책을 누군들 바라지 않겠나. 따지고 보면 문 대통령의 감동 정치가 빛을 발한 건 이전 정권이 워낙 권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신선함이 유독 돋보였지만, 이 또한 지나치면 약발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혹여 문 대통령이 탁 비서관을 재발탁한 게 이런 이유에서라면 더욱 문제다. 갈수록 떨어지는 지지도를 ‘이미지’와 ‘이벤트’로 붙잡아 보겠다는 뜻이 엿보여서다.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네이밍에 치중한 듯한 ‘지역균형 뉴딜’ 정책에서도 그런 징후가 느껴진다. 그러나 임기 초반이야 그렇다 해도 후반은 그리 한가하지 않다. 어설픈 분칠 보다는 분명한 성과로 답해야 할 시기다. ‘감동 정치’는 결코 억지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