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몽골은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닌 대제국이었다.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면적이 로마 제국의 2배, 알렉산더 대왕 제국의 4배였다. 몽골이 제국의 형태를 완성한 건 칭기스 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 때다. 이민족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고 원나라를 세워 황제에 오른 그는 진정한 의미의 ‘팍스 몽골리카’를 일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도쿠가와 막부의 안정을 이끌어 명군으로 지칭되는 도쿠가와 이에미쓰 역시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자다. 나라나 기업의 흥망사에서 창업주의 아들이 아버지의 그림자를 벗어나기 어려운 반면 손자대에 꽃을 피우는 사례는 많다. 조선시대 세종이 그랬다.
유수한 국내 기업 중엔 1990년대에 2세 경영이 시작된 곳이 많았다. 그러나 명암은 극명하게 갈려 상당수가 퇴출의 길에 들어섰다. 실패한 2세 경영인의 행로는 대개 비슷하다. 선대의 성공과 영광을 이어야 한다는 부담과 강박 탓인지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이어지곤 했다. 2세들은 창업 세대가 맨주먹으로 사업을 일으키며 경험한 쓴맛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난관을 좀처럼 헤쳐가지 못했다. 때 마침 IMF 사태가 결정타를 날린 측면도 있다. 진로 삼미 해태 한라 쌍용 한보 쌍방울 등 수많은 기업이 내리막을 걸었다.
대표적 2세 경영인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영면에 들었다. 이병철 회장 타계 후 그가 회장으로 재임했던 27년은 그야말로 상전벽해의 세월이었다. 1987년 취임 때와 비교해 2014년 병환으로 물러날 당시 삼성은 매출 87배, 영업이익 222배, 순이익 678배로 뛰었고, 시가총액은 500배로 커졌다. 아버지가 삼성상회라는 건어물 가게를 TV와 냉장고를 만드는 번듯한 회사로 키웠다면, 아들은 기껏해야 2, 3류에 불과하던 내수용 기업을 세계 1등 반도체와 휴대전화를 생산하는 초일류로 탈바꿈시켰다.
이건희 회장처럼 아버지 콤플렉스 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 2세는 또 있다. 정몽구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나 작년에 작고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모두 그런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기업 1세대는 초인적인 근면성과 추진력으로 국가의 산업화를 일궜다. 하지만 성공한 2세는 1세대의 성취에 결코 안주하지 않았다. 글로벌 인재를 참모로 끌어모았고 나라 밖으로 나가 세계와 맞장을 떴다. 앞으로 3세, 4세 경영인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그들에게도 아버지의 그늘은 짙지만 하기에 따라 그 앞에 펼쳐질 새로운 세상은 한계가 없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