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산 김정한 선생이 향년 89세로 세상을 등졌던 1996년 11월의 상황이 갑자기 스친다. 죽음을 앞둔 한 소설가의 마지막 행적을 당시 국제신문 등 지역 언론은 주요 기사로 연일 대서특필했던 기억이 새롭다. 산소 마스크를 쓰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동아대학교병원으로 이동하던 소설가의 모습을 담은 1면 사진은 독자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다. “사람답게 살아라”는 요산의 문학정신이 고스란히 지면으로 전달됐다.
전설 같은 24년 전의 옛 이야기를 새삼 떠올리면서 지금은 고리타분한 용어로 치부되기 십상인 ‘문학정신’을 거론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직 법무부 장관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각종 의혹을 놓고 “소설 쓰시네”를 넘어 “장편소설 쓴다”는 말까지 남긴 터라 이 시대 문학의 존재 이유와 그 가치를 한 번쯤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는 이유에서다. 문학마저 희화화하는 개념 없는 정치판에 경종을 울리고 싶기도 하다. 오는 23일부터 부산문단의 ‘큰 어른’이었던 김정한 선생을 기리는 제23회 요산문학축전이 열린다니 딱 적절한 시기다.
중·장년 세대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청춘의 젊은 피가 철철 끓어넘치던 시기 ‘문학소녀’나 ‘문학청년’이라는 단어가 던지는 의미가 남달랐던 것을. 창작의 쓴 고통도 달게 느껴졌던 그 시절 문학은 세상을 호령했던 문화의 요체였다. 당대를 대표했던 작가와 시인 등은 21세기 연예계와 스포츠 스타와 어금버금한 인기를 누렸다. 글을 잘 썼기 때문에 누리는 인기는 아니었다. 작품 밑바탕에 깔린 문학정신에 독자들은 열광했던 것이다.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고, 세상사 모순과 참 진실의 서사 구조를 그렸던 문학은 지난 20세기 문화 분야 최고봉으로 군림했다. 부산만 해도 요산과 향파 이주홍 선생을 중심으로 수많은 문인과 문학 애호가들이 한데 모여 시대 흐름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 문인의 풍자와 해학, 그러면서 가식과 거짓을 거부하는 문학정신을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냉정하게 따진다면 문학의 시대는 한참 전에 저물었다. 디지털 시대 누구나 쉽게 글을 쓰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세상에 전통 문학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 묵직한 울림이 있는 메시지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오는 30일까지 이어지는 요산문학축전의 주제는 ‘마주 보는 얼굴이 아름답습니다’라고 한다. 지금은 사람과 마주하면서 “사람답게 살아라”는 요산의 문학정신을 되새기고 싶다.
강춘진 논설위원 choonj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