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프랑스 가정집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긴 앞치마를 입은 엄마가 저녁을 차리면서 아이들에게 감사기도를 드리라고 말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작은 아이는 유아용 낮은 의자에 앉아 엄마를 보며 두 손을 모으고 있고, 식탁 의자에 앉아 기도 손을 한 큰아이는 그런 동생을 바라본다. 서민 가정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그림이지만, 완성된 그해 루이 15세의 애장품이 되었다. 방탕과 사치스런 생활로 유명했던 왕은 어째서 이런 소박한 그림을 좋아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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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시메옹 샤르댕, 감사기도, 1740년. |
이 그림을 그린 장 시메옹 샤르댕은 정물화의 대가였으나 서민 가정의 겸손한 삶을 그린 장르화에도 뛰어났다. 그림뿐 아니라 실제로도 그는 겸손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다. 젊은 나이에 왕립 아카데미 회원으로 뽑히고 왕실과 귀족의 후원을 받는 화가였음에도, 돈이나 명예에 욕심내지 않았다. 18세기 파리 화단에선 역사화가 가치를 높게 인정받았고, 귀족들을 중심으로 화려하고 장식적인 로코코 미술이 유행했지만, 그는 흔들림 없이 가정생활의 평온함을 담은 고요하면서도 따뜻한 장르화를 평생 추구했다.
이 그림을 그렸을 당시 샤르댕은 아내와 어린 딸을 차례로 잃고, 아홉 살 아들만 곁에 둔 상태였다. 여전히 엄마 손길을 필요로 하는 아들을 보며 아내의 빈자리와 딸에 대한 그리움이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어쩌면 그림은 기억 속 아내와 아이들 모습일지도 모른다. 드레스를 입어 딸처럼 보이는 작은 아이가 사실은 아들이기 때문이다. 의자 등받이에 매달린 북이 남자아이임을 알려준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인 북채는 식사 시간 전까지 이 아이가 북을 치며 놀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박하고 평화로운 가족의 일상을 담은 이 그림은 제작된 그해 8월 살롱전에 전시되었고, 그때 그림을 본 루이 15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몇 달 후 화가는 왕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이 그림을 선물했고, 왕은 크게 기뻐했다. 화가 자신도 이 그림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후 몇 개의 버전을 더 그렸고, 그중 한 점은 죽을 때까지 간직했다.
루이 15세는 두 돌이 되기 전 엄마를 여읜 탓에 위안을 주는 엄마 같은 존재를 갈망하며 방탕한 연애 생활을 했다고 알려졌다. 엄마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상과 가르쳐주는 감사기도는 천하를 가진 군주라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동경의 세계였을 터. 이 그림에 마음을 빼앗긴 이유일 것이다. 어쩌면 화가는 자신의 아들처럼 일찍 엄마를 잃은 국왕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이 그림을 그렸는지도 모른다. 280년 전에 그려졌지만 이 그림이 전하는 메시지는 지금도 유효해 보인다. 행복은 돈이나 권력이 아닌 따뜻한 가족애에서 나온다는 것,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 말이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