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원과 해양경찰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해양경찰이 가진 업무의 특수성으로 그러한데, 해양영토 수호, 수색구조 안전관리, 해상교통 관제, 수사, 해양오염 방제 등 어느 하나 선원과 동떨어진 업무가 없다. 다시 말해, 선원과 해양경찰은 바다에서의 삶을 함께 영위하는 동반자이다.
해양경찰이 지난 9월 10일, 67번째 해양경찰의 날을 맞았다. 특이하게도 이 날은 해양경찰 창설일이 아니다. 해양경찰이 창설된 날은 1953년 12월 23일이다. 그러나 해양경찰은 2011년 배타적 경제수역 발효일인 9월 10일이라는 날짜를 해양경찰의 날로 정했다. 국제 해양 문제와 해양 안전의 중요성에 국민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해마다 이날을 해양경찰의 날로 기념해왔다.
최근 해양경찰의 쇄신 활동이 주목된다. 해양경찰청이 스스로 나서서 청렴한 문화를 확산하겠다며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을 비롯한 8개 해양수산단체가 참여하는 ‘청렴해야 안전해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해경이라는 공기관이 규제와 단속을 앞세우기보다는 스스로 자정 노력과 감시와 응원을 통한 청렴한 해양문화를 만들어 나가겠다며 참여해 달라며 손을 내밀었고, 이에 7만 선원을 대표한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도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며 그 손을 맞잡았다.
청렴한 해양문화 확산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배경에는 해양경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와 평가가 수년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기도 했지만, 같은 어부의 아들로 나고, 바다 마을에서 자란 김홍희 해양경찰청장과의 동질감도 작용했다. 바다에서 열심히 일해도 알아주는 이 없고, 늘 천대와 소외 속에서 버텨온 ‘우리’였기 때문이다.
선원에 의해 바다에서의 수산물 어획과, 해상물류가 이뤄지며, 세계 속 해양입국이 가능했다. 그러나 올해 6월 말 부산항에 들어온 러시아 선박에 대한 항만 당국의 검역이 부실했고, 이어 집단감염이 발생하자, 제일 먼저 내려진 조치는 우리 선원에 대한 자가격리 강제였다.
그 동안 코로나19 감염자가 ‘0명’이란 성과를 내고 있었는데도, 우리 선원에게 내려진 조치는 홀대 그 자체였다.
정부를 상대로 강력한 항의와 함께 즉각적인 대응에 돌입했다. 그리고 한 달여 만에 자가격리 의무화 방침은 철회됐다. 선원의 승선 생활은 격리된 공간인 선박에서 이뤄지고, 매일 매시간 철저한 방역과 점검을 해오고 있음을 누차 알렸다.
청와대, 국회, 해양수산부 주요 관계자와 면담을 가지며 설득을 지속해온 활동은 선원이란 직업과 직무에 대한 설명의 연속이었다. 면담 대상 기관에 선원 출신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현장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해양경찰에 거는 기대는 이전과는 다르다. 해체와 부활이란 고통의 시간을 지나, 해양경찰법이 새롭게 제정된 과정이며, 현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은 ‘진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제 취임 6개월, 젊은 해경청장에게 주어진 책무와 풀어야 할 현안이 많겠지만, 바다 선배로서 한 마디 충언한다.
국내 최대 선원노동조합 연합단체인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도 수년 전, 분열을 거쳐 통합을 이뤘다. 7만 선원만큼이나 많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복잡한 관계를 풀어가면서 노동 여건 개선, 권익 향상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
선원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도 일렁이는 바다만큼이나 끊이지 않고 크게 변했다. 해결도 쉽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본다. 그러나 그 어느 조직이든 단결하지 않고서는 그 어느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신념으로 마음 속에 단결을 새기고 걸어가고 있다.
김 해경청장과 해양경찰에도 굳센 의지를 품고 가야 할 길을 계속 나아가기를 당부드린다. 청렴과 안전이란 기항지를 거쳐 국민의 신뢰라는 목적항에 닿기를 기원한다. 청렴한 해양문화 확산과 안전한 바다 만들기에 우리 선원노련도 끝까지 함께 하겠다.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 연맹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