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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닫힌 사회와 그 친구들

  • 김용석 철학자·문화비평가
  •  |   입력 : 2020-09-03 19:48:27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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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보 멍청이야. 열리긴 뭐가 열렸다는 거야. 다 닫혔어, 다 닫혔다구.” 1997년 서른셋 나이에 요절한 작가 김소진의 단편소설 ‘열린 사회와 그 적(敵)들’에 나오는 대사다. 열림과 닫힘의 모순을 말하고 있음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닫힌 사회의 문을 격파하고 열린 사회를 추구하고자 했던 동지들이 사실은 열린 사회의 적들이었다는 아이러니가 이 투박한 대사 속에 담겨있다.
   
그림 서상균
김소진의 소설 제목은 철학자 칼 포퍼의 책 ‘열린 사회와 그 적들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언어와 개념이 지니는 파급력은 가끔 우리를 놀라게 한다. ‘열린 사회’라는 말을 포퍼가 처음 쓴 것은 아니지만, 전 세계적으로, 특히 우리나라에서 이 말을 대중화하는 데에 포퍼의 저서는 큰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열림에의 추구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이에 열린 사회에 대한 의식을 심층화하고 구체화하는 데에 포퍼의 저서는 적지 않은 몫을 했다. 당시 제2기 군사독재를 경험하던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서 젊은 세대의 지적 갈증을 해소해주는 데 일조했던 중요 도서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1980년대를 거쳐 90년대에 들어서서 ‘열린’이란 형용사는 다양한 영역에서 유행어가 되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는 열린 마음, 열린 교육, 열린 장터, 열린 음악회 등의 표현에 매우 익숙해졌다. 정당 명칭에도 ‘열린’이란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적어도 피상적으로는 우리 모두 열린 사회 속에 산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포퍼에게 열린 사회란 무엇인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포퍼는 책의 서론에서부터 닫힌 사회와 열린 사회를 정의한다. 닫힌 사회는 “마술적인 위력에 순종하는 부족적인” 사회이고, 열린 사회는 “인간의 비판력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사회다. 그는 결론 부분에서 닫힌 사회는 마술적, 부족적, 집단주의적인 사회이며 열린 사회는 개개인이 개인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라고 다시금 강조한다. 비판적 합리주의를 내세우는 포퍼의 입장에서 이런 결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당연히 인간의 이성이다. 열린 사회를 이루기 위한 행위는 이성에 기초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이성의 한계에 대한 인식과 이성적 판단에 대한 지속적인 자기비판이 동반돼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진정 열린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이해집단의 행태를 보면서 이에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정치 영역에서 각 진영은 서로에게 합리적 비판을 하고 있을까. 상대방을 향해 감정적 욕설을 내뱉고 있다고 하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깝지 않을까. 닫힌 사회끼리는 소통이 존재하지 않는다. 반감, 모욕, 무시 그리고 분노와 복수의 감정을 주고받는 일만 있을 뿐이다.

심지어 종교단체조차도 이해 집단이 되어 과격한 자기주장에 매진한다. 일부 종교단체는 포퍼의 말대로 ‘마술적인 위력에 순종하는 부족적인’ 사회, 곧 닫힌 사회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일부 종교 지도자의 행태는 가히 신성 파괴라고 할 만하다. 신조차 견디지 못해 떠난 성전에서 그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 마술적이고 부족적인 위력으로 자기들만의 세계, 곧 닫힌 사회를 만들고 그 친구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는 열린 사회를 부단히 지향하면서도, 오늘 우리가 확인하듯이 왜 닫힌 사회의 폐해에 직면했는가. 이성의 역할이 줄어들고, 감각과 감성의 지나친 활용이 급속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문화적 변동이 큰 역할을 했다. 열린 세상을 지향하는 과정에 동반해서 디지털 문화의 도입과 확산이 함께 일어났으며 지금도 진행 중이다. 더구나 지금은 온갖 디지털 문화를 즐기는 방식이 하나의 도구, 즉 스마트폰이라는 모든 기능을 흡수한 ‘전체주의적 기기’로 획일화돼 있다.

디지털 문화 향유의 효과는 이성적인 것에 대해 감각적인 것의 우위를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직관, 이미지, 속도, 자극, 충동, 감동 유발 등이 오늘의 문화적 특성을 대변한다. 이런 문화적 특성과 연계된 정치·경제적 이해관계 또한 각 방면에 상존한다. 디지털 문화의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가 겨냥하는 것은 ‘사람들의 감각, 특히 시각, 청각, 촉각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을’ 구체적인 방식을 개발하는 것이다. 각종 소셜 미디어와 스트리밍 서비스도 이에 속한다.

이런 문화 트렌드는 30여 년 전 이미 예상했던 것이다. 이런 문화적 향유를 희망적으로 보기도 했다. 그것이 또한 열린 사회로 가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 문제의 근원은 정도의 차이다. 감각성 충족 위주의 문화가 점점 더 ‘사람’에게서 ‘생각’을 분리하는 역할을 할 정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어떤 학자는 이를 ‘이성의 상실’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과도한 비관주의도 경계의 대상이다. 이런 현상은 이성의 상실이 아니라 이성을 제대로 활용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사람의 모든 능력은 쓰지 않는 만큼 퇴화한다). 따라서 주술적이고 타자에 대해 배타적이며 과격한 동일 감정의 집합체인 닫힌 사회를 구성하기는 훨씬 더 용이해진다.

그럼에도 과도한 감각의 활용으로 우리의 지친 몸이 기댈 수 있는 것, 우리가 능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 곧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것, 그리고 타인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생각’이다. 감각적 차원의 중요성이 증가하는 만큼 이성적 차원과 합리적 태도의 필요도 늘어난다. 더구나 각종 갈등이 팽배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줄곧 희망해온 열린 사회를 이루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역설적으로 독서와 사유의 기회를 주고 있지 않은가. 모든 기회는 그것을 기회로 삼을 때에만 의미 있고 효과적이다.

철학자·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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