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過猶不及).
논어 선진편에 실린 공자의 교훈이다. ‘넘쳐도 모자라도 똑같이 문제’란 뜻이다. 뭐든 그렇다. 다정도 무정도 문제다. 흘러넘치는 정은 상대에겐 부담과 간섭이, 자신에겐 마음의 상처가 된다. 그렇다고 너무 쌀쌀맞으면 주변 사람이 없어 우울하고 힘겹다.
과식과 소식도 그렇다. 과잉 섭취는 비만을, 지나친 다이어트는 면역 결핍을 가져온다. 둘 다 만병의 근원이다. 뭐든 적당해야 좋다. 공부도 일도 노는 것도 칭찬과 꾸중도 그렇고 세상만사가 다 그렇다. 운동이라고 다를까. 운동의 두 가지 금과옥조가 있다.
하나는 ‘용불용설’이다. “생명체의 사용하는 기관은 발달하고 그렇지 않으면 퇴화한다”는 얘기다. 프랑스 진화론자 라마르크의 이론이다. 그는 기린과 펭귄을 예로 들었다. 기린은 오랜 세월 높은 나뭇가지 잎을 먹다가 목이 길어졌고, 펭귄은 날지 않고 물가에 정착해 날개가 퇴화했단다. 라마르크의 이론은 유전성이 입증되지 않아 그저 그럴듯한 얘기로 넘겨졌다.
하지만 그 이론은 신체 발달과 건강의 관점에선 오늘도 힘찬 응원의 메시지로 남아있다. 그래서 바쁜 시간을 쪼개 날마다 달리는 이도 있고, 더 크고 싶어 달밤에 줄넘기하는 아이도 있다. 그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신체는 물론, 마음의 힘까지 생겨서다.
운동하면 행복 호르몬도 생기고 자신감까지 부쩍 커진다. 긍정적 성향으로 바뀌니 모든 일이 술술 풀린다. 라마르크도 예상하지 못한 효과다.
다른 하나는 ‘루우 법칙’이다. 루우는 독일 생물학자다. 그는 라마르크 지지자였다. 하지만 용불용설을 이렇게 수정했다. “사용하는 신체는 발달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사용하면 오히려 악화된다.” 분명히 맞는 말이다.
운동에 관한 과학적 정설이 있다. 선수 출신인 사람은 일반인보다 신체기관의 노화가 빠르다. 과한 운동으로 활성산소가 체내에 쌓여서다. 근육, 관절, 심혈관 등의 조직도 더 약하다. 수명도 일반인과 비교하면 짧다. 운동선수뿐일까. 오랜 세월 격렬한 운동을 즐겨왔던 일반인도 그렇다. 과한 운동은 초기에 근육과 관절의 통증 등 가벼운 증상을 가져온다. 그러나 반복하면 신체가 악화된다. 심지어 돌연사할 수도 있다. 운동의 무자비한 역습이다. 특히, 고령자, 평소 운동을 하지 않던 사람, 허약한 사람 그리고 아직 발육 중인 어린이에게 과한 운동은 약이 아니라 독이다.
그렇다면 적당한 운동은 어떤 걸까. 이를 콕 짚어서 말할 순 없다. 체력, 체질, 신체 발달 상태 그리고 운동 내용과 상황이 서로 달라서다. 다만, 다음의 몇 가지 내용을 살피면 좋겠다.
첫째, 운동 중이나 후에 허리, 무릎, 어깨 등의 통증을 체크해 본다. 통증이 있다면 즉시 중단한다. 2, 3일 내 낫지 않으면 운동량을 50~70%로 줄인다. 좀 더 쉬운 운동으로 바꿔도 좋다. 아픈 만큼 건강해지는 거라며 고집부리지 말자.
둘째, 운동 중엔 맥박과 호흡이 빨라진다. 이는 심폐기능이 튼튼해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나 운동 뒤 그 회복이 더디고 답답한 증상이 있다면 이 역시 무리한 운동이라는 경고다. 운동을 과시나 과욕으로 하지 말자. 셋째, 몸에 땀이 살짝 배고 옆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정도가 적당하다. 이렇게 매일 30~60분씩 즐겁게 운동하자.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운동량이 부쩍 줄었다. 경기가 침체돼 운동할 여건이나 의욕을 잃은 탓이다. 그러나 이럴수록 체력과 심력을 키워야 한다. 집이나 가까운 공원에서 운동하자.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풀겠다며 급작스럽게 운동을 하지는 말자. 적당히 운동하자. 서둘지 말고 쉬지도 말고. 그리고 넘치지 않게 모자라지도 않게.
부산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