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서구 동대신동에 있던 구덕수원지는 1902년 준공된 부산 최초의 현대식 저수지다. 1972년 9월 14일 이 수원지 둑이 터졌다. 하루 사이 무려 224.7㎜의 폭우가 내려친 것이다. 연 강수량의 5분의 1이 넘는 양이다. 수원지에서 쏟아진 물은 대신동 일대를 쓸어버렸다. 사망 60명, 실종 14명, 이재민은 수천명에 달했다. 세월이 50년 가까이 흘렀지만 부산에 큰 비만 오면 이 동네 어르신들은 혀를 차며 옛일을 떠올린다. 수원지는 이후 복구됐다가 구덕터널이 뚫리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부산이 집중호우나 폭설같은 자연재해에 취약한 건 상당 부분 독특한 지형과 관련이 깊다. 부산은 태백산맥 줄기인 금정산맥과 동해안 쪽 금련산맥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길다랗게 발달했다. 낙동강과 수영강이라는 큰 하천은 도시를 세로로 분할하고 있다. 따라서 도로망이 산 강 바다를 피해 남북 방향의 직선형으로 발달할 수밖에 없다. 그게 중앙대로다. 구릉성 산지와 하천 주변 저지대가 많은 지형은 비가 오면 빗물이 순식간에 한곳으로 모이기 쉽도록 만든다.
부산 최초의 지하차도는 1965년 건설된 동구 초량제2지하차도다. 이번에 폭우로 인명 사고가 난 초량1지하차도는 이듬해 두번째로 생겼다. 1990년대까지는 부산에 지하차도가 3군데 밖에 없었다. 그러다 90년대 중반 이후 급속히 늘어나 현재 47곳(2018년 기준)에 이른다. 지하차도의 탄생 역시 부산의 지형 및 도로 여건과 관련이 있다. 해안선을 따라 놓인 철길을 가로질러 건널 방법은 고가나 지하 뿐이다. 도시 미관과 안전상의 이유로 고가도로보다 지하 터널 형식의 도로가 많이 뚫렸다. 지금도 도심 교통난 해소를 위해 대심도 지하도로 5개 노선이 건설 중이거나 건설 예정이다. 예상치 못한 재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국립환경과학원이 몇년전 전국 단위 기후변화 취약성 평가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부산은 하위다. 32개 평가항목 중 태풍 홍수 등 6개에서 취약성이 심각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행정안전부 통계를 보면 2018년 자연재해 피해액은 전국 합계가 1413억 원이었다. 광역시 이상 6대 도시 전체 피해액은 135억 원인데 그중 부산이 73억 원을 차지한다. 54%나 된다. 자연재해는 해마다 편차가 크기 때문에 이 수치가 일상적이고 고정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부산이 태생적으로 재해에 취약한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는 건 사실이다. 기후변화에 더 많은 경각심이 필요한 도시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