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서울의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모임 하나가 열렸다. 현수막에는 ‘저출산·고령화와 지방소멸위기 공동대응을 위한 업무협약 및 기념세미나’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문구 그대로 저출산과 고령화를 막고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을 살리는 방안을 모색해보자는 자리였다.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자치분권위원회,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등 대통령 직속 4개 기구와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등 4개 협의체 관계자가 함께했다.
참석 기관의 비중이나 주제를 고려하면 상당히 무게감이 있는 행사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언론이나 사회의 관심은 예상외로 낮았다. “저출산, 고령화, 지방소멸이라는 단어를 매일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며 살고 있으나 수많은 정책에도 불구하고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정현찬 농어업·농어촌특별위윈회 위원장의 이날 발언은 이 사안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얼마나 안이한지를 적확하게 지적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소멸’(消滅)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유쾌하지가 않다. 특히 이 단어가 ‘지방소멸’로 엮어지면 끔찍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지방이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져 없어진다는 뜻이니 지역의 소도시에서 나고 자란 처지에서는 결코 가볍게 받아들일 일이 아니다. 일각에서 지방소멸이라는 극히 부정적인 단어를 좀 더 순화된 용어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용어를 사용하든 지방의 위기는 상존한다는 점이다. 지방소멸이 화두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저출산으로 우리나라 인구가 계속 주는 데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가 벌어지면서 지방의 인구 유출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까닭이다. 지난달 통계청은 ‘최근 20년간 수도권 인구이동과 향후 인구 전망’에서 7월 1일을 기준으로 수도권 인구(2596만 명)가 비수도권 인구(2582만 명)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인구가 역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70년의 경우 수도권 인구는 913만 명으로 비수도권(2312만 명)의 40% 수준에 머물렀다.
더 우려되는 바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와중에도 수도권 집중화는 오히려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통계청은 이번 자료를 통해 앞으로 50년 동안 부산과 대구 등 영남권 인구가 485만 명 감소할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까지 내놨다. 올해 부산 인구가 334만 명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50년 뒤에는 부산뿐 아니라 다른 영남권 도시 몇 개를 합친 인구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나온 한국고용정보원 문건도 우울하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소멸위험지역이 97곳(42.5%)에 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읍·면·동으로 범위를 넓히면 30년 이내에 1503개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러니 지방소멸은 기정사실이며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것밖에 없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다면 정부는 당장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인구 감소도 적극 막아야 하겠지만 지방의 인구 유출 현상에 대해 불가항력이라며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양질의 일자리뿐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누릴 만한 기반시설까지 수도권에 몰려있는 비정상 상황을 빨리 해결해야 한다. 역대 정권들이 한결같이 목소리를 높였던 국가균형발전이 왜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는지에 대한 처절한 반성도 뒤따라야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정책의 대부분이 수도권에 국한된 것을 바라보는 비수도권 주민의 마음을 정부는 알고 있기는 한가.
정치권도 힘을 보태야 마땅하다. 소멸 위기에 다다른 지방을 살릴 수 있는 근거인 특별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그나마 최근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서삼석 의원 등이 관련 법안을 대표발의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 의원은 소멸이 예상되는 지역에 대한 국가지원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조세특례제한법, 지방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 ‘지방도시 인구감소 위기지역 지원 패키지법’을 내놨다. 서 의원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지방자치단체에 국고보조율을 상향해 지급할 수 있는 근거 등을 담은 ‘인구소멸위기지역 지원 특별법 제정안’을 제출했다. 국회에서 이 법안들이 빨리 처리가 돼야 함은 당연하다.
대한민국이 ‘수도권 공화국’일 수는 없다.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 새는 양쪽 날개를 퍼덕여야 하늘로 비상할 수 있다. 생각해보자.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는 나라가 과연 정상적인지를.
염창현 세종본부장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