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배경의 영화 ‘친구’(2001년)에서 인상적인 장면 하나가 떠오른다. 극중의 주인공 준석과 상택이 산복도로변 어느 난간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부산항 북항과 원도심 야경이 전면에 펼쳐진 모습이 그것이다. 낮 시간 같은 곳에서 찍은 둘의 홍보용 스틸사진에서도 북항 앞바다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그러나 현재 그곳에서의 전망과 주위 풍경은 사뭇 다르다. 하기야 그 당시는 북항 안쪽을 가로지르는 부산항대교의 개통(2014년)보다도 훨씬 전이다.
산복도로는 1950년 6·25전쟁 이후 고지대에 형성된 피난민촌을 연결하기 위해 만든 길이다. 피난민촌 규모가 얼마나 컸으면 이런 씁쓸한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즉, 한밤중 부산항으로 상륙하던 미군들이 고지대에 빽빽이 들어찬 판잣집 불빛을 보고서는 엄청나게 높은 빌딩으로 생각해 ‘원더풀’을 연발했다는 것이다. 이 산복도로의 공식 이름은 망양로(望洋路)다. 동구 구봉산과 중구 보수산 등의 산허리를 관통하는 왕복 2차로인데, 부산항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는 뜻이 담겼다. 여기에다 지역 역사·문화의 체취가 서린 이바구길과 벽화거리, 유적지 등의 조성이 더해지면서 관광지로서의 가치도 새롭게 조명되는 추세다.
하지만 근래 망양로와 원도심의 조망이 심각한 위기에 놓였다. 기존 고층 빌딩과 아파트 외에도 북항 재개발 1단계 구역의 상업지구에 높이 200m의 생활형 숙박시설(레지던스) 건축이 최근 허가되어서다. 이를 두고 지역·시민사회단체들은 난개발이라며 부산시에 허가 취소를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29일에는 시청 앞에서 항의 집회도 열었다. 산복도로보다도 높게 건립돼 조망권을 해치는 데다, 북항 재개발의 원래 취지에도 맞지 않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더 큰 문제는 1단계 구역에 10개가 넘는 초고층 건물들이 충장대로를 따라 들어설 계획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망양로에서 북항 앞바다를 보기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사실 지금도 망양로는 빛이 바랬다. 일대를 둘러보니, 중구 영주동 ‘하늘눈전망대’ 등의 일부 장소를 제외하고 바다 조망이 힘들다. 동구의 스카이웨이전망대는 이름이 퇴색된 느낌이다. 이곳 유치환 선생의 시비 ‘그리움’이 그걸 말해주는 듯하다. 부산연구원은 지난해 펴낸 연구결과물 ‘산복도로의 어제와 오늘’에서 위기의 망양로라고 지적했다. 산복도로가 항구의 불빛과 바다 조망을 잃어버렸다는 점에서다. 경관이 더는 망쳐지지 않도록 남은 부분이라도 잘 관리·보존하는 게 절실하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