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은 끝났지만, 되짚어 봐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우선 선거과정이다. 한마디로, 역대 최악인 현 20대 국회의 행태가 재연된 듯하다. 고통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선거다운 선거는 고사하고 혼탁과 파행으로 얼룩져서다. 막판까지도 상호 막말과 폭행 시비, 비방전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니 정책 대결은 거의 실종 상태였다. 사실 그간 우리 선거전의 양상이 대부분 그러했다고 해도, 이번에는 도가 지나치다는 인상을 떨치기 어렵다.
하기야 여당이든 야당이든 공천부터 파열음이 계속 불거져 나왔다. 탈락한 인사 측의 거센 반발은 낯익은 모습이라 쳐도, 손바닥 뒤집듯이 후보들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희한한 장면이 숱하게 나왔다. 공천시스템이 오작동하지 않고서야 이런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질 리 만무하다.
입법부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에 어울리지 않는 각종 개발공약도 남발되었다. 실현 가능성과 재원 확보는 접어두고 득표에 도움되는 공약을 내놓고 보자는 식이다. 심지어 가로등·주차장 설치나 아스팔트 포장 같은 골목 공약도 쏟아졌다. 자치단체장·지방의원 선거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반면, 시급한 정치개혁과 자치분권, 균형발전, 민생 관련 입법 공약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는 제도적 영향도 크다. 선거법상 대통령·지방자치단체장 후보는 공약서에 재원 조달방안을 명시하도록 돼 있으나, 국회의원 후보는 그런 규정이 없으니 말이다.
그도 그렇지만 압권은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만든 비례위성정당이다. 주지하듯이 이는 새로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철저히 왜곡 악용한데서 비롯됐다. 애초 거대 양당의 독점적 구도를 타파하고,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 기회를 높이려는 게 이 제도의 취지다. 특히 정당 득표율과 원내 의석수의 심각한 괴리를 개선하면서 비례성과 대표성을 강화하는 연동형의 당위성에는 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위성정당이란 변칙과 꼼수 앞에서 빛이 바랬다. 여기에다 총선 결과, 양당 구조가 오히려 더 확고해지고 제3당이 몰락하면서 선거제 개혁의 취지는 완전히 상실되고 말았다.
해외 많은 나라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행했지만, 우리와 같이 위성정당이란 해괴한 술수를 부린 사례는 극히 드물다. 참으로 민망스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반칙과 온갖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무조건 이기면 된다는 논리가 지배하는 선거판이 정상적일 수는 없다. 그런 풍토에서 시대적 화두인 공정과 정의의 가치가 통하고 꽃을 피운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비례위성정당들이 막대한 선거보조금을 타낸 것은 뻔뻔함의 극치다. 그 과정에서 기상천외한 ‘의원 꿔주기’로 교섭단체 기준을 억지 충족했으니 말문이 막힌다. 총선용 정당을 급조한 것도 모자라 다른 작은 당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가로챈 꼴이다.
근본적으로는 비례용 위성정당의 후보 등록에 대한 적법성 여부도 따져볼 문제다. 개정 공직선거법 제47조는 민주적 심사와 대의원·당원 등의 투표절차를 거쳐 비례대표 후보를 추천하도록 돼 있다. 이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후보등록을 모두 무효로 하는 조항도 신설됐다.
하지만 통합당이 미래한국당 공천에 노골적으로 개입했고, 민주당도 더불어시민당 공천을 원격조정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후보 추천과정이 속전속결로 이뤄진 터라, 법이 정한 절차가 준수됐는지도 의문스럽다. 그럼에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여기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용인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니 시민단체들이 후보등록 무효 소송과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나선 게 아닌가.
여야 정치권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먼저 정치를 본연의 자리로 돌리고, 선거 민심을 받드는 일이다. 선거가 끝난 후에도 당리당략에 얽매여 타협과 대화를 외면한다면 정치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가적 재난과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하는 건 말할 나위가 없다. 취약계층과 청년층 대책, 불공정 등의 난제가 산적하다. 그리고 망가진 선거제를 바로 고쳐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을 게 뻔하다. 종전에 똑똑이 봤듯이 여야의 첨예한 이해관계로 합의를 이룰 가능성이 낮아서다. 그렇게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객관적인 외부 기구에 맡기고, 그 방안에 승복하기 바란다.
모름지기 대의 민주주의는 과정의 정당성과 합법성이 존중되어야 하는 제도다. 아무리 결과가 좋아도, 그것에 이르는 과정과 수단이 부당하다면 참다운 민주주의가 아니다. 하물며 꼼수와 편법 덩어리인 위성정당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그것을 낳은 선거제가 유지된다면 우리의 정당민주주의는 퇴행을 거듭할 뿐이다. 한국 정치와 선거 질서를 무너뜨리는 위성정당 선거제가 우리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논설위원 ksyoung @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