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총선 1호 공약을 발표한 건 지난 1월 15일이다. 선거법 공수처법에 이어 검경수사권조정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이틀 만이다. 조국 일가 비위, 유재수 감찰 무마, 청와대 울산시장 하명수사 등 여권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정가를 뒤흔들고 3개 법안 강행 처리의 여진이 계속되는 와중이었다.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이 일주일 먼저 발표한 첫 번째 공약도 ‘공수처 폐지’였다. 이것으로 여권의 폭주와 실정이 좀 더 부각되길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날 여당이 내놓은 건 ‘무료 와이파이 전국 확대’였다. 상대가 만든 논쟁거리를 야당이 물고 늘어지는 사이 여당은 완전히 새로운 화두를 던진 것이다. 불난 집은 그냥 두고 “여기 꽃이 피었네”하는 식이다.
민주당의 와이파이 대응이 뜬금없는 듯하지만 정치공학적으론 일리가 없는 게 아니다. 정치수사(修辭)에서 가장 나쁜 수단은 방어라는 말이 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선거토론회를 분석해보면 자기 과시, 상대 공격, 자기 방어의 세 가지 전략 중 방어 비율이 제일 낮다. 정치인들이 수사학에 능통해서가 아니다. 수세적으로 보이기 싫은 본능이 그렇게 시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골리앗이 이길 확률은 70%가 훨씬 넘지만 골리앗의 규칙에서 벗어나면 다윗도 승률을 60% 이상으로 올릴 수 있다는 분석연구가 있다. 남의 판에서 싸우기보다 룰을 바꾸거나 판을 새로 벌이는 게 이롭다. 선거는 상대를 자신의 링으로 끌어들이는 게 절대적으로 유리한데, 이 링이 바로 이슈를 규정하는 틀인 프레임이다.
여야의 21대 총선 구호는 ‘코로나 국난 극복’과 ‘경제 실정 심판’이다. 이낙연 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은 “국민을 지키는 정부, 안전한 나라를 위해서는 압도적인 총선 승리가 필수”라고 외치고 있다. 코로나는 한때 여당의 아킬레스건이었다. 하지만 진정세가 예상보다 빠르고 진단 속도나 방역 수준에 대한 해외 언론의 칭찬이 이어지면서 지금은 오히려 강점으로 내세운다. 이에 맞선 김종인 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의 일성은 “못 살겠다. 갈아보자”이다. 소득주도 성장을 하겠다고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비정규직의 정규화를 시행했지만 늘어난 건 소득이 아니라 생활고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지난 3년 실정을 심판해야 한다고 벼르고 있다.
그런데 이건 표면적인 프레임이고 이번 선거에선 수면 밑 프레임들이 더 기세를 부리고 있다. 이례적인 선거 상황에서 가동되는 이례적인 이중 프레임이다. 무상지원 프레임이 그중 하나다. 정부가 소득 하위 70%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주기로 했는데 민주당은 일주일도 안 돼 전 국민 지급으로 돌아섰다. 매표 행위라고 비난하던 통합당은 갑자기 입장을 바꿔 전 국민에게 1인당 50만 원 지급을 제안한데 이어 대학생과 대학원생에게 100만 원씩 등록금으로 보태주자고 한다. 정의당 안은 전 국민 1인당 100만 원이다. 여야 없이 더 많이, 더 빨리 주자고 하는 걸 보면 돈 때문에 표심이 많이 요동치긴 하는 모양이다. ‘공짜라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속담도 있는데 제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아니니 정치인의 퍼주기 경쟁은 식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가 예상치 않게 등판한 조국 프레임이다. 민주당 낙천 인사들로 구성된 열린민주당의 작품이다. 이들은 검찰총장이란 명칭을 검찰청장으로 바꾸자고 한다. 조국을 윤석열과 맞세워 선거 마케팅에 적극 활용 중이다. 열린민주당은 상대보다 1표라도 더 얻어야 승리하는 지역구 후보가 없는 비례정당이다. 당연히 지지층만이라도 끌어모아 전체 득표율을 올리는 게 목적이다. 처음에 조국의 등장을 부담스러워하는 듯하던 민주당도 조국 세력 결집으로 상승세가 나타나자 내심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눈치다. 통합당은 조국 소환을 마다할 이유가 더 없다. 조국 어젠다가 반조국 표심을 자극해 코로나에 잊혀가던 정부여당 심판론이 재부상하길 바라고 있다. 통합당은 “경제를 살릴거냐, 조국을 살릴거냐”는 구호를 대놓고 쓴다. 여당에 불리한 이슈인 조국의 소환이 범여당인 열린민주당에 의해 이뤄졌으니 기형적인 선거법이 낳은 뜻밖의 역설이라 할 만하다.
선거를 프레임 싸움으로 보는 건 정치 전문가들만이 아니다. 그간 프레임이 먹혔던 이유는 대중도 공감했기 때문이다. 프레임이 좋아서 선거에 이긴 게 아니라 대중의 여망을 프레임에 담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선거가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 때문에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선거일 이후까지 연장됐다. 올해는 만 18세라는 새로운 유권자도 생겼다. 국난 극복이냐 경제 심판이냐, 조국이냐 반조국이냐, 더 주느냐 덜 주느냐의 대결이다. 내세운 깃발이 어지럽다. 진실과 허위, 선동과 시대정신을 가려내는 유권자의 안목이 절실하다.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