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정치는 명분 싸움이라고 한다. 심판은 국민이 한다. 명분을 지켰다고 항상 이기는 건 아니다. 특히 단판 승부인 선거에서는 명분을 내세우다 실리를 잃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저력은 생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지역구도 타파라는 명분으로, 사지나 다름없던 부산에 출마를 강행했었다. 이 결단은 훗날 대권 후보로 몸집을 키우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그래서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 한다. 지금 당장 유리해 보이는 선택이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고, 불리한 선택이라도 결과는 좋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이번 선택은 명분을 중요하게 여긴 ‘노무현 정신’과 맞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은 비례연합정당 참여 여부를 전체 권리당원 투표로 결정하기로 했다. 어제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고, 투표는 12, 13일 온라인으로 실시된다. 최종 확정은 당원 투표 결과가 나와야 한다. 하지만 투표 실시 자체만으로도 ‘4+1’ 협상으로 밀어붙인 선거법은 누더기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표 방지와 소수당 존중을 위한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한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질 판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여당의 이번 결정은 철저히 실리만 따진 것으로 여겨진다. 비례대표 몇 석을 더 챙기는 실리를 위해 명분을 버렸다. 비례정당을 창당하면 범진보 진영이 22석을, 미래한국당이 18석 정도를 얻을 수 있다는 민주연구원의 분석이 이를 뒷받침한다.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창당한 미래통합당을 편법이라고 비난하면서, 같은 편법으로 맞선 것이다.
중요한 건 여론 향배다. 꼼수에 맞선 꼼수는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실리도 장담하기 어렵다. 명분을 잃은 여당에 유권자가 등을 돌리면 총선 전체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 더욱이 “비난은 잠시지만 책임은 4년간 이어질 것”이라는 식의 변명과 합리화는 여론만 악화시킨다. 이제 남은 민주당의 선택은 당원 투표뿐이다.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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