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선진국’ 대한민국이 ‘역병 공포’에 떨고 있는 가운데, 마스크 대란이 겹쳤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모품에 불과했던 마스크가 ‘생존 필수품’으로 인식되면서다. 마스크 한두 장을 구하기 위해 약국이나 대형마트 앞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장사진을 이루는 것은 이제 흔한 광경이 되었다. 약국에서 마스크를 판매한다고 하지만 하루하루 약국으로 배달되는 마스크가 몇 시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마스크가 아쉬운 국민은 아침부터 기약 없이 약국 앞에 줄을 선다.
대구에 코로나19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직후인 지난달 25일. 문재인 대통령은 대구를 방문해 “마스크 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28일 여야 대표 회동에서는 “마스크 수급은 내일모레까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대책을 내놓았으니 금방 효과가 있을 것이란 설명과 함께. 그러면서 “국민께는 송구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마스크 수급은 계속 대통령의 언급과는 따로 놀았다. 결국 문 대통령은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마스크를 신속하고 충분히 공급하지 못해 국민께 불편을 끼치고 있다”면서 다시 한번 사과했다.
급기야 9일부터는 ‘마스크 구입 5부제’가 도입된다. ‘준 배급제’가 실시되는 셈이다. 하지만 지난 주말에도 약국 앞에는 마스크를 구하려는 사람으로 장사진을 이뤘다. ‘5부제’가 실시된다고 해도 마스크 구입이 원활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에서이다. ‘내일쯤이면…’이라는 반복되는 정부 발표를 믿지 못하고 독자생존에 나선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기자간담회를 통해 “마스크 수급에는 문제가 없을 듯하다”라고 밝힌 지난달 3일부터라도 제대로 대처했으면 이런 상황으로까지는 치닫지 않았을 터다. 하지만 정부는 마스크 국외유출을 계속 방치했다. 지난달 26일에야 비로소, 그것도 전면 수출금지가 아닌 수출제한조치에 들어갔다. 그 사이인 지난달 1일부터 20일까지 마스크 대중 수출액은 평소의 수백 배 규모로 폭증했다. 엄청난 규모의 마스크가 중국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비슷한 시기 대만에서는 행정원장(총리)이 직접 나서 “자신을 구해야 남도 구한다”면서 중국의 우한 봉쇄 다음 날인 1월 24일부터 마스크 수출을 전면 금지시켰다. 이어 2월 6일부터는 ‘마스크 실명제’를 실시하며 가격을 통제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왕이 중국 외교 부장과의 전화통화를 하루 앞둔 1월 28일 마스크 200만 장과 방호복 및 보호경 각 10만 개를 전달하겠다고 밝힌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고 했다. 공자는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서지 못한다”고 말했다. 굳이 공자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백성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정치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마스크 파문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다. 마스크 장사진 대열에 동참한 사람들 입에서 “마스크 관리조차 제대로 못 하는 정부가…”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국민은 “정부를 믿고 과도한 불안은 자제해달라”(1월 26일) “코로나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다”(2월 13일) “정상적인 일상활동과 경제활동으로 복귀해달라”(2월 17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은 잘못된 보고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위안해왔다.
대구에서 하루 20명의 집단감염자가 확인된 이튿날인 지난달 20일 영화 ‘기생충’ 팀과의 청와대 ‘짜파구리’ 오찬에서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의 파안대소하는 모습에도 애써 눈을 감았다. 사태 초반 중국인 입국 차단을 주장한 의사협회와 감염학회의 주장을 묵살했다가, 뒤늦게 “초기라면 몰라도 지금은 실효적이지 않다”고 언급한 것도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자’면서 이해해왔다.
하지만 마스크 대란이 촉발되면서 악화된 민심은 그런 기억을 모두 소환하고 있다. 마스크 대란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대통령 탄핵 촉구 청원에 147만 명이나 서명한 것도 청와대는 눈여겨봐야 한다. 너무나 쉽게 거론되는 탄핵의 필요성이나 가능성에 무게를 두자는 것이 아니다. 민심의 분노치를 청와대가 직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나간 일은 대통령 말마따나, “사태를 극복한 이후에 복기하자”고 해도 앞으로가 중요하다.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대처해야만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고, 그래야만 국민과 함께 ‘미증유(未曾有)’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혹시나, 만에 하나라도 국가적인 위기인 코로나19를 4월 총선에 활용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여당이건 야당이건 민심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벌써 해괴망측한 진영논리로 결집을 시도하거나, 책임 떠넘기기로 총선 이슈화를 하겠다는 움직임이 우려스러워서 하는 말이다. 지금은 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의 에너지를 끌어모을 때다.
서울본부장·서울정치부장 thrk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