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대구 동성로 사진을 어제 봤습니다. 상당수 시민이 자발적인 자가격리에 들어간 탓이라고 들었습니다. TV를 통해 본 식당 사장님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인력도 장비도 병상도 부족해 불안하다는 간호사의 하소연이 귓가에 쟁쟁거립니다. 대형마트 앞에 몇 백 m나 늘어선 마스크 구입 행렬을 보며 “평생 이런 일은 처음”이라던 어르신의 한숨으로 땅이 꺼집니다. 그렇지만 충격적인 위난 때마다 익히 보고 듣던 아우성과 분노는 대구 경북(TK)에 없었습니다. 고통은 호소했지만 대다수 차분하고 절제된 목소리였습니다.
TK는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면 누구보다 빨리 분연히 일어섰던 의(義)의 고장입니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퇴계 이황 선생의 학맥을 이어받은 수많은 의병이 대구 경주 상주 영천 의성 안동에서 붓 대신 칼을 잡았지요. 일제강점기에는 일제가 지운 나라빚을 국민이 대신 갚자고 나선 국채보상운동이 대구 광문사에서 시작됐습니다. 전국에서 독립운동가를 제일 많이 배출한 안동은 또 어떻습니까. 4·19혁명은 그 도화선이 2·28 대구 학생운동이었습니다. 위대한 문인과 예술가를 수없이 배출한 지역 정서의 바닥에는 개인보다 대의를 앞세우는 결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새 아픔이 없었다면 거짓일 겁니다. 어느새 수구를 대표하는 지역인 양 치부되고 있고 TK 출신 전직 대통령은 옥고를 치르고 있으니 자존심에 금이 갈 만합니다. 며칠 전 여당은 당정청 코로나19 대책회의 결과를 브리핑하면서 ‘대구 봉쇄’라는 단어를 언급해 다시 한번 상처를 줬습니다. 일부러 소금을 뿌리고자 한 말은 아니었을 겁니다. 다만 그 무신경에 많은 이가 놀랐습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TK에서만 1000명을 넘었습니다. 그래도 보세요. 대구시의사회의 긴급 요청을 받고 각지에서 의료진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오거돈 부산시장도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카뮈가 소설 ‘페스트’에서 이야기하듯 인간을 구제하는 건 결국 인간의 선한 의지일 겁니다. 우리 사회엔 눈치 보느라 전염병 대처의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도지사’나 재앙으로 사익을 추구하는 ‘코타르’ 같은 인간만 있는 게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치료에 헌신한 의사 ‘리외’, 이기심을 버리고 전향한 신문기자 ‘랑베르’, 이념을 행동으로 옮긴 활동가 ‘타루’ 같은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부산 경남 역시 환자 수가 자꾸 늘어 불안합니다. 하지만 우리 같이 버팁시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