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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개혁을 위한 아카데미상은 없지만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2-13 19:39:18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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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변한다. 좋은 일로 변하기도 하고 나쁜 일로 변하기도 한다. 최근 우리 일상에 변화를 일으킨 나쁜 일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다. 전 세계적으로 보건 위생에 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 이런 가운데도 좋은 일이 불러온 변화는 사람을 기쁘게 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쾌거가 그것이다. 한 나라에서 이뤄낸 예술적 성과가 전 세계적 문화 변동에 영향을 줄 계기가 됐다.

그림 서상균
그런데 변화의 조짐조차 없는 영역도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이다. 현 정부는 국가 원수의 탄핵이라는 ‘혁명적’ 사건을 통해 탄생했다. ‘촛불혁명’이라는 상징적 언어가 이를 잘 보여준다. 정부는 혁명적 사건을 계기로 나라의 잘못들을 개혁해 나가고자 하지만 거센 반대에 부딪혀 있다. 의지는 저항과 맞서며 개혁은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사회·문화적 큰 사건들과 변하지 않는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한 총선 이슈들이 대중의 관심을 독과점하고 있어도, 우리 삶에 더 중요한 것은 개혁의 진행이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삶에 진짜 소중한 변화일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개혁의 과업을 위해 2년 남짓한 시간을 갖고 있다. 항상 그렇듯이 남은 시간이란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적지 않은 시간이다. 어떤 개혁이든 지속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혁의 이유와 가치가 분명해서 다음 정부에도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개혁의 의미에 대해 본질적인 성찰을 하고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혁명의 감동’으로 개혁을 시작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 때문이며, 개혁에 대한 반발로 이제는 오히려 의기소침해 있지 않나 하는 우려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혁명하거나 개혁하는 것이다. 개혁은 혁명과 다르다. 이 단순한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우선 혁명은 단박에 일어나는 것이지만, 개혁은 지루할 정도로 계속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윈스턴 처칠도 혁명은 한 번의 저항을 받지만 개혁은 지속적인 저항을 받는다고 했다.

혁명에는 피아가 분명하다. 곧 혁명의 주체와 그 대상이 분명히 나뉘어 있다. 그래서 상대를 전복하면 된다. 그러나 개혁의 과정에서는 개혁의 주체 역시 개혁의 대상이 된다. 개혁은 구체적으로 잘못된 것들을 고쳐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개혁을 하려면 개혁 주제의 부동산 문제도 개혁의 대상이 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혁명에는 반드시 우군과 추종자가 있지만, 개혁에는 우군도 추종자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이 정치 행태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했던 마키아벨리의 말처럼 “구질서로부터 이익을 누리던 모든 사람이 개혁자의 적이 되는 반면, 새로운 질서로부터 이익을 누리게 될 사람들은 기껏해야 미온적인 지지자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변화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혁신자를 공격할 기회가 있으면 전력을 다해 당파적으로 공격”한다.

오늘 우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개혁자는 아예 우군이 없다는 자세로 개혁의 지난한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 정치적 우군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 사이에서도 추종자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사람들은 익숙해진 삶을 바꾸는 것을 매우 꺼린다. 개혁이 ‘괜히 싫은’ 사람도 적지 않다. ‘요령’이란 문제도 있다. 사람들은 잘못된 제도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활용해 살아오는 동안 터득한 요령이 아까워 쉽게 버리지 못한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그럼에도 개혁을 멈출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다. 되돌리고자 한다면 지금까지 왔던 길을 모두 돌아가야 한다. 개혁은 지속적인 저항을 받기 때문에 상처를 많이 입는다. 그 상흔들을 모두 즈려밟으며 돌아가야 한다.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벌써 집권 정부의 임기가 끝났다고 간주하고 싶어 한다. 그럴수록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물론 개혁 주체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자기 수정을 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적어도 이런 점들에서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

혁명의 언어는 상징적이지만 개혁의 언어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혁명은 열정의 구호를 외치지만 개혁은 설득의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적폐 청산’은 혁명의 구호에 가까웠다. 구호는 클리셰이지만 소통은 크리에이티브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구체성을 가진 개혁의 개념을 분야별로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혁명은 과거를 뒤엎는 것이 우선적 목표이지만, 개혁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 궁극적 목표이다. 이사야 벌린이 말했듯이 “불의, 가난, 예속, 무지 같은 악은 혁명으로든 개혁으로든 고쳐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악과 싸우면서 살 수만은 없다. 사람들은 긍정적인 목표를 위해” 살아간다. 미래를 위한 긍정적인 목표를 확실히 제시하면 과거에 무엇이 부정적이었는지 감지할 수 있다.

알베르 카뮈는 “현대의 모든 혁명은 국가를 강화하는 쪽으로 귀결했다”고 비판했다. 현대의 개혁도 국가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 우리도 개혁 과정에서 국가의 이름으로 뭐든 해줄 것처럼 했던 측면이 있다. 국민에게 요구할 줄 알아야 한다. 전혀 구체적이지 않은 ‘국민의 뜻’을 남발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이 달라지기 위해서는 국민의 인식도 변해야 함을 용기 있게 요청할 줄도 알아야 한다.

다시 좋은 일로 세상이 변해 기뻤던 때로 돌아가 보자. 나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으리라는 것을 발표 50초 전에 확신했다. 수상작 발표를 위해 무대에 선 제인 폰다가 이 말을 했을 때였다. “올해 아카데미가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오늘 밤은 영화가 우리 개인의 삶과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리고 수상자 이름이 든 봉투를 열면서 덧붙였다. “인식을 개선하는 것보다 무엇이 더 중요하겠습니까.”

도저히 바뀔 것 같지 않은 세상에서도 변화의 환희를 맛보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개혁에 완수는 없어도 나라의 개혁이 가져올 효과는 어떤 기쁨이라도 가져온다. 개혁을 위한 아카데미상은 없지만, 진지한 변화를 기대할 줄 알아야 하고, 그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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