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영화의 거장 마틴 스콜세지가 한 말이라는데, 이번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말하기를, 어릴 때 책에서 본 이 말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하여 봉 감독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묵직하게 작품을 만들어 왔으며 마침내 아카데미에서 4개 부문에 걸쳐 트로피를 받는 영화사적 업적을 이루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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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서상균 |
무엇이 이 대단한 일이 일어나게 했을까? 기자회견에서 봉 감독이 말한 것처럼, 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치밀하고 종합적인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나는 우선 ‘가장 개인적인 것’과 ‘가장 창의적인 것’을 연결한 힘, 그 끈질김에 주목하게 된다. 엄청나게 유명한 감독이 한 말이라도, ‘에이, 설마 그럴까? 꿈 같이 좋은 말이긴 하지만 냉엄한 현실에서 살아남으려면 성공할 만한 걸 해야지’라며 나름대로 정리하고 체념해 버렸다면? 그렇다면 그 말은 그저 책에 나온 멋진 말, 참으로 잘난 누군가에게만 해당되는,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그쳤을 것이다.
알랭 바디우라는 철학자가 말하기를, 어떤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이른바 ‘사건’을 만나 그에 충실할 때 비로소 주체가 된다고 하는데, 스콜세지의 그 말을 사건으로 받아들인 봉 감독은 그것을 믿고 내내 그와 같은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종래와 달라진 영화의 주체가 된 것이다.
아울러, ‘가장’이라는 말을 삭제시키지 않은 고집도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본다. 예술장르의 특성상 개성을 발휘하는 것이 다른 분야보다는 장려되겠지만 역시 현실을 고려하여 하고 싶은 것도 적절하게, 어느 정도껏 해야 한다는 충고와 암시가 적지 않았을 터인데, 그는 개인적인 것을 최대치로, 더욱 깊이 추구한 것이다. 자끄 라캉이 ‘사드와 함께 칸트를’이라는 글에서, ‘너의 행동이 보편적인 준칙에 부합하도록 하라’는 칸트의 정언명령은 사드가 보여준, 경계를 넘어서는 시도와 결합할 때 그 내용이 채워져 가는 것임을 주장하며 정신분석의 윤리로 제시한, ‘너의 욕망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의 한 실천으로도 보인다.
그리고 봉 감독에게 영화가 그러했던 것처럼 내가 법학을 선택하게 했던 개인적인 순간이 다시금 떠올랐다. 대학과 학과를 먼저 지원하고 시험을 봐서 들어가는 방식이었기에 어떤 전공을 공부할지 이것저것 생각해 보던 어느 날, 거리에서 갑자기, 지나는 사람들의 속이 들여다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내게 확 와 닿은 사람들의 마음의 주요한 내용은 슬픔이었고 상당히 공통적인 것이었다. 나를 적시고 휘청거리게 한 그 정동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엔 심리학을 고려했는데 좀 알아보니 다소 실험 위주이고 개인의 내면에 치중하는 듯한 인상이어서 법학으로 선회했다. 법은 일반적인 제도를 다루니 사회적 고통과 상처에 더 효율적으로 응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 다행히 나도 법이 그러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며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잃지 않고 있다. 법이 해 온 일이 그다지 효율적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고 심지어 일반적인 효과를 정당하게 발하지도 않은 것 같아서 때때로 무참한 기분도 든다. 그래도 여전히, 법이 사람을 통제하고 지배하기보다는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는 합리적인 장치를 갖춤으로써 삶을 지지하기를 바라고 그를 요청한다.
상처 입은 이들이 방치된 까닭에 어떨 땐 더 만만한 위치에 있는 존재에게 함부로 대하는 잔인함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이 마땅히 일을 하기를 바란다. 개개인이 겪게 되는 이런저런 일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단하니 안 겪어도 될 부당한 일, 힘든 상황은 법체계가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그 당연한 일이 행해지게 할지 종종 막막한데, 나도 아마도 그 믿음과 요구는 지킬 것 같다. 그것으로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