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20대 국회가 출범할 때 최대 화두는 협치였다. 이제는 사생결단식 대립을 끝내자는 데 여야가 공감대를 이뤘다. 의석 과반인 정당이 없고 다당체제가 됐으니, 대화·타협의 정치가 더 절실해진 요인도 컸다. 이에 당시 정세균 국회의장은 개원사에서 협치를 역설했고, 2년 뒤 후반기의 문희상 의장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협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결국에는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 모두 생생히 봤듯이 지난 연말 국회는 여야 대치정국 속에 난장판을 이뤘고,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러니 국회의 협치 수준에 대한 국민 평가가 좋을 리 만무하다. 엊그제 전국 여론조사에 그대로 나타났다. 20대 국회의 여야 간 협치를 묻는 질문에 ‘잘못됐다’는 응답이 90.6%로 나온 거다. ‘잘됐다’는 긍정 반응은 7.7%에 그쳤다. 툭하면 공전·파행이 빚어지고 법안 처리율은 역대 최저이니 당연한 귀결이다. 그렇다고 해도 국민 절대 다수가 이런 반응을 보였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더 주목되는 점은 지지정당과 지역, 남녀·연령을 막론하고 모든 계층에서 부정 평가가 압도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어느 국회의원이 오죽하면 ‘다음 21대 국회에서는 협치를 꼭 해보고 싶다’는 글을 최근 SNS에 남겼을까 싶다. 여야가 치열하게 경쟁하더라도, 타협할 때 타협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하기야 그간 국회는 제 구실을 못했다. 사회의 복잡다단한 이해관계와 갈등, 각종 차별, 불공정, 중앙-지방 격차 등을 해결하기는커녕 이런 문제들을 거의 도외시하거나 오히려 부채질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협치나 상생의 정치가 그리 쉽지만은 않을 터다.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를 막고 협의의 정치를 이끌자는 취지로 국회선진화법이 8년 전에 도입됐건만, 지금까지 나아진 게 없다. 식물국회, 동물국회의 오명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여당은 협치를 내세우면서도 일방주의로 흐르고, 제1 야당은 국정 견제·감시라는 미명 아래 발목을 잡는 게 다반사였지 않나.
이런 현상은 위정자의 잘못이나 정치풍토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제도적 요인이 크다. 대통령과 행정부에 권력·권한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부 아니면 전무 게임’이 판을 친다. 대선에 패한 야당이 정부·여당 흠집내기에 열중하는 것도 그걸로 이득을 취해야 다음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다는 생각에서다. 지금 여당도 야당 시절에는 마찬가지였다. 국회가 ‘민의의 전당’은 고사하고 ‘대선 베이스캠프’ 같은 역할을 해 온 이유다. 이와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제도적으로 끊지 않고서는 여야 협치는 어쩌면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자명하다. 현행 승자독식의 권력체제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거다. 우리 정치의 중심이 대통령과 그 권력을 둘러싼 여야 다툼이니, 그런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예컨대 총리임명만 해도 그렇다. 국회가 복수 후보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선택하는 정도의 권한 분산이 필요하다. 이는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고 순진하게 국회만의 협치를 바라는 것은 하세월이고 헛일이라는 게 이미 입증됐다.
비단 협치를 위한 것이 아니어도 분권형 개헌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1987년 민주화 투쟁의 산물인 기존 헌법은 수명을 다했다. 지난 33년간 우리나라의 엄청난 변화를 담아낼 수 없다는 게 공통된 인식이다. 정세균 총리가 인사청문회에서 밝힌 것처럼 이제는 개헌을 통해 입법·행정·사법부 간 권한이 재배분되고, 중앙·지방정부 사이의 분권도 제대로 실현하는 게 옳다. 그 중에서도 진정한 자치분권을 보장하는 개헌으로 가야 지방에 활로가 열리고, 국가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
오는 4·15총선으로 구성될 21대 국회에서는 협치가 더 큰 과제가 될 걸로 보인다. 소수당에 유리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가 치러지는 만큼, 의석 과반의 다수당이 출현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만일 여당이 승리해 과반 의석을 갖는다고 해도 협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총선 이후 야당 인사가 참여하는 협치내각 구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개헌이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여야의 공약·공천 경쟁도 갈수록 뜨겁다. 그도 좋지만 우선은 최악의 20대 국회와 협치 실종에 대해 대국민 반성문부터 쓰는 게 최소한의 도리다. 아울러 분권 개헌을 공약해야 마땅하다. 제1 야당 측이 총선 승리를 전제로 개헌 추진의사를 밝혔는데, 그건 어불성설이다. 개헌은 4월 총선이 끝나고 1년 이내가 가장 적기다. 2년 전 지방선거 때의 호기를 놓쳤지만 이번에는 개헌이 꼭 이뤄지길 갈망한다. 정 총리의 표현을 빌리면, 국회에서 협치를 하지 않고 지금 같은 승자독식체제가 지속되어서는 대한민국의 미래 발전이 없다는 점에서다.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