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정권 심판론은 역대 총선의 단골 메뉴였다. 정권 중간평가 성격이니 당연한 슬로건이고 대체로 먹혀 들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또한 제21대 총선 승리를 위해 이를 내걸었다. 그런데 돌아가는 모양새가 그들의 뜻과는 사뭇 다르다. 새해 잇단 여론조사에서 정권 심판론보다는 야당 심판론이 더 우세하게 나타난 까닭이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야당 심판론이 49%로 정권 심판론(37%)보다 무려 12%포인트나 높았다. 그간 좀처럼 오르지 않았던 한국당의 지지율을 감안하더라도, 다소 의외의 결과다.
하지만 그 원인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이 없지 않지만, 대안 제시는커녕 지리멸렬하기만 한 야권에 유권자들이 더욱 실망했다는 이야기다. 보수 혁신을 요구하는 각계 목소리에도 한국당은 거꾸로만 갔고, 보수 야권은 사분오열됐다. 게다가 지난 연말 선거법 등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보여준 한국당의 무전략과 무모함은 이런 실망감에 기름을 부었다. 야당이 상당수 국민으로부터 이토록 비난받은 적이 있나 싶을 정도이니, 이례적이긴 해도 압도적인 야당 심판론은 자업자득인 셈이다.
그동안의 숱한 경고음에도 불구하고, 이대로는 총선 필패라는 위기감을 이제서야 깨달은 걸까. 한국당이 뒤늦게 보수 통합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새로운보수당과 통합을 위한 공식 논의기구인 ‘혁신통합추진위원회’가 지난 9일 마침내 구성되면서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지난해 11월 6일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보수 대통합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지 두 달 만이다. 당시 유승민 의원이 제시한 ▷탄핵의 강을 건너자 ▷개혁보수로 나아가자 ▷낡은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짓자라는 보수 재건의 3원칙에 어느 정도 뜻을 같이한 듯하다.
물론 이제 막 첫발을 뗐으니 모든 게 미지수다. 특히 황 대표는 새보수당이 요구한 보수 재건 3원칙에 대해 우회적으로 수용한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아직은 불분명한 상황이다. 당장 한국당 일각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어떤 형식이든, 이 부분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고는 통합 논의가 한 발짝도 나아가기는 힘들어 보인다. 새보수당이 이를 통합 논의 진전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어서다. 등 떠밀리듯 뒤늦게 보수 통합에 나서긴 했으나 상당수가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새보수당이 요구하는 3원칙은 달리 말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찬반 책임 면제 ▷명확한 개혁보수 노선 설정 ▷흡수 통합이 아닌 제3의 정당 창당이다. 황 대표로서는 어느 것 하나 쉽게 내놓기 힘든 부분이다. 그나마 ‘개혁보수 노선 설정’은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측면이 있는 만큼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탄핵과 제3의 정당 창당 문제는 현실적인 난관이 만만치 않다. 자칫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대표직마저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과연 황 대표 스스로 보수 통합이란 대의를 위해 이 모두를 버릴 수 있을까가 관건인 것이다.
황 대표 자신도 문제지만 당내 반발이란 관문을 넘을 수 있을지 역시 의문이다. 당장 친박계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찬반 책임을 묻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에 거친 반응을 쏟아낸다. 일부 영남권 의원은 “유승민과 통합하면 탈당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제3당 창당 원칙과 관련해서도 파열음이 터져나온다. 한국당이 새보수당을 흡수 통합 한다 해도 불만인데 당 대 당 통합이라니 황 대표가 덫에 걸릴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무엇보다 총선이 코앞인데 당장 자신의 공천이 날아갈지 모르는 마당에 개혁보수니 대통합이니 하는 대의가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사실 새보수당의 요구는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제3당 추진을 제외하면, 탄핵 논란을 매듭짓고 개혁보수로 나아가야 보수가 살 수 있다는 주장은 그간 숱하게 제기됐다. 지난 대선 때도, 지방선거 때도 보수대통합 요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으나 번번이 탄핵 논란과 보수 정체성 문제에 발목이 잡혔다. 돌고 돌아 황 대표 체제가 들어섰지만 친박은 질기게 살아남았고 당은 과거로 회귀했다. 그 해묵은 갈등과 퇴보의 결과가 새해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으로 나타난 야당 심판론이다.
한국당으로서는 이제 더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지난 총선과 대선, 지방선거 세 번의 실패를 계속 이어갈지 기로에 섰다. 뒤늦었다는 느낌이 들지만 이제라도 보수통합의 움직임을 보이니, 과거의 실패가 이번에도 되풀이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물론 여론조사에서 야당 심판론이 정권 심판론보다 우세했다는 게 석 달 뒤 표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첫발을 내디딘 보수 통합이 그저 선거 전 으레 일어나는 이합집산의 하나일 뿐이라면 표심을 얻기 어렵다. 한국당에겐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