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한두 살때의 일이다. 경남 함안 시골집 헛간 옆에는 돌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꽤 오래된 나무라 둥치가 굵고 키 또한 컸다. 돌감은 이름 그대로, 가을까지 다 커봤자 씨알이 조약돌만 했다. 무척이나 떫은 녀석이어서 빨갛게 익어도 그냥 먹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먹고 살 식량이 부족하던 때, 돌감이라고 어찌 내버리랴.
가을걷이와 보리심기를 끝낸 늦가을에, 작은형과 나 그리고 동생이 달려들어 그 돌감을 땄다. 까치밥만 남겨두고 몽땅 거두면 예닐곱 접 되었는데, 엄마는 그걸 나무 상자에 차곡차곡 담아 시렁에 올려두었다. 달포 지나서 날이 한층 추워지면 돌감은 홍시로 변해, 연말 무렵이면 단맛이 절정에 달했다. 지독히도 떫은맛이 숙성된 만큼 돌감의 홍시 맛은 가히 기가 막혀, 다른 감과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 맛있는 홍시를 먹고 뱉어낸 씨가 퇴물 그릇에 쌓일 즈음. 당시는 어린 나이라 새해의 의미를 어찌 알랴만, 나는 연초에 그 버려진 감 씨의 눈을 틔우려는 작심을 곧잘 했다. 한겨울에 움트는 새싹을 보고 싶어 장독대 옆 빈 땅에다 감 씨를 묻고는, 대나무 살을 받쳐 비닐을 씌웠다. 딱히 성목(成木)으로 키우겠다는 큰 뜻을 품은 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싹이 터 잎이 돋아날 때까진 하루에도 몇 번씩 돌보다, 며칠 지나면 호기심도 시들해진 데다 돌보기를 게을리하여 애순은 얼어 죽기 일쑤였다. 그래도 연초가 되면 또다시 감 씨를 심길 반복했다.
#2. 성인이 되어 매년 해온 일이지만, 올해도 새해 벽두에 나는 신년계획이랍시고 몇 가지를 다이어리에 적었다. 아침 명상하기, 전자 드럼 배우기, 라틴어 배우기 등등. 한데 돌이켜보면 이런 것들은 삼십 년 전에도, 십 년 전에도, 신년만 되면 한두 번씩은 계획을 세웠거나 마음먹은 것이다.
전자 드럼 배우기만 해도 그렇다. 글쓰기 도중에 기분 전환할 겸 손목 운동 삼아 배우려고 3년 전에 휴대용 제품을 사놓고는, 삼일은커녕 겨우 스틱을 쳐 소리가 나오나 안 나오나 시험해본 정도에서 그치고 말았다. 이렇듯 새해를 맞을 때마다 신년계획이랍시고 이것저것 세워놓곤 작심삼일로 끝나버린 게 얼마나 많은가. 이십여 년 전 일본어 독학과 오카리나 배우기나 한 달 넘겼을까,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중단된 계획이 여태 부지기수다. 그래도 새해가 되면 또다시 계획 세우기는 반복하고….
#3. 예년과 마찬가지로, 새해를 맞은 지 열흘이 지나는 이맘이면 연초에 계획 세웠던 일들을 뿌득뿌득 돌이켜본다. 그리곤 마음먹었던 일들이 작심삼일에 지나지 않았다며 주먹으로 제 머리통을 쥐어박기까지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유명 식자나 사회적 리더라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글로써, 아니면 말로써, 작심삼일이란 경구를 들먹이며 신년에 계획했던 일들에 대해 다시 마음 다잡으라고 들볶는 데야.
하지만 작심삼일이란 것도 결과 측면에서만 보려는 욕심의 잣대에 나 자신을 얽매려는 건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즉 어떤 행위나 특정 작업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또 어떤 것은 다른 일이 더 중요하여 그걸 우선하다 보면 늦춰지거나 일시 중단될 수도 있을 터. ‘작심’과 ‘삼일’을 떼어놓고 보면, 반드시 어떤 결과를 원하는 기간 내에 얻으려고 기를 쓰지 않았다 해서 스스로 한탄에 젖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기왕에 신년계획을 세웠으면 가능한 한,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꾸준히 밀고 나가는 게 제일이겠으나, 작심삼일에만 그쳤어도 너무 자책하면서 살 일은 아니라고 본다. 무엇이든 작심을 하였으면 비록 사흘밖에 이행하지 못했을지라도, 언젠가는 또다시 작심하거나 다른 성과로 맺을 수도 있는 거니깐. 비유컨대 겨자씨만 한 작심일지언정 작심을 했다는 건, 그만큼 자신을 일으켜 세울 꿈이랄까 주체성은 가지고 있다는 증표인즉. 작심삼일이란 프레임으로 섣불리 판단하거나 자신을 재단하기보다는, 그것도 가치 있는 인생을 살고자 하는 몸부림의 한 단면으로 받아들이는 게 어떨까 싶다.
열한두 살 적의 어린아이를 보라지. 싹을 틔우려는 작심만 있었지 꾸준한 관리 행위는 하지 않아, 완전한 과실수로 키워내지는 못했어도 얻은 결과는 있잖은가? 비록 나무에서 얻은 돌감은 아니지만 지금 같은 글감으로 변형된 결과를 얻었으니. 작심조차 하지 않는 게 문제지 새해나 연중에나 어떠한 작심을 했다면, 사흘만 하고 말았든 1년 열두 달 꾸준히 했든 그 또한 나의 인생사 아닐 텐가. 귀하게 여기시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