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무 자르듯 일도양단하다간 다채로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뿐더러 왜곡할 우려도 크다. 1965년 미국 버클리대학의 제데 교수가 퍼지(fuzzy)이론을 개발한 건 그 때문이다. 그는 0과 1의 이진법, 즉 “예” 또는 “아니요”의 두 가지 처리방법뿐인 컴퓨터 시스템을 이 이론으로 다양한 결정이 가능하도록 개선했다. 퍼지이론을 도입하기 전의 지하철은 속도를 갑자기 줄이거나 늘리는 바람에 덜컹거림이 심했다. 그러나 이 이론을 적용한 뒤에는 가속과 감속을 여러 단계로 나눠 처리할 수 있게 되어 승차감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하고 흐릿한(fuzzy) 중간지대에 머무는 존재가 많다는 건 동서양의 약학에서 잘 드러난다. 비상(砒霜)은 사약으로 주로 사용하지만,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학질이나 풍담(風痰)을 치유하는 약재로 소개돼 있다. 복어의 독을 정제해 만든 테트로도톡신을 신경통, 관절통, 류머티즘의 진통제로 쓰는 것도 같은 이치다. 고대 그리스에선 이처럼 사용하기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을 파르마콘(pharmakon)이라고 했다.
철학자 데리다는 서구의 근대문명을 이분법적 사유의 산물이라고 했다. 인간과 자연, 이성과 감성, 남성과 여성, 문명과 야만, 영혼과 육체 등등. 이런 이분법은 인간에 의한 자연 정복,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 같은 폭력을 수반한다. 그로 인해 자원 고갈과 환경 오염, 남녀 갈등 등 부작용을 야기한다. 데리다는 그 대안으로 ‘경계의 사유’를 주문했다. 있다거나 없다고 확정하지 않은 경계에서 사유함으로써 폭력성을 예방하려는 것이다.
서구 근대문명의 폐해는 냉전과 함께 한반도에 그대로 이식됐다. 남한 자본주의와 북한 사회주의 사이에 중립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립주의자는 종북과 반북의 이분법적 구도에서 종북으로 매도당하기 일쑤였다. 이 구도가 지난 8월 조국 전 법무장관이 검찰의 수사를 받기 시작하면서 친조국과 반조국의 대립으로 진화했다. 올해의 마지막 날까지 그 남남 갈등의 기세는 여전히 사납다. 조 전 장관이 과연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을 무마했는지 여부는 이들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이 비루한 정치싸움에서 어느 쪽이 최종 승자가 되느냐만 중요할 따름이다. 이분법의 블랙홀이 진실은 물론 시민의식과 나라의 미래마저 삼킬 태세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