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을 돌아보면 암울한 일이 너무 많았다. 특히 경제는 암울 그 자체였다. 소상공인들이 무너지고, 중소기업들이 매물로 쏟아져 나오며, 수출은 마이너스 성장에서 허덕였다. 30대와 40대의 일자리가 무너졌다. 이런 암울함으로 2019년이 도배되는가 싶었는데 아스라한 곳에서 희망의 빛이 보였다. 이들마저 없었다면 2019년은 정말 기억하기 싫은 한 해가 될 뻔했다. 몇 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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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자경 |
그 첫 번째로는 오랜만에 국회가 일을 한 것을 들 수 있다. 데이터 3법을 여야가 합의하여 입법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데이터 3법이란 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을 말한다. 이들 법이 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고, 개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방향이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추어 개인정보를 포함한 광범위한 정보를 시장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방향이다. 이런 취지에 국회가 동의한 것이다. 이들 법이 통과되면 한국도 데이터 전쟁에서 다른 나라와 충분히 견주어 볼 수 있게 된다. 아직 선거법 등 여야 간 기 싸움으로 법의 통과가 늦어지고 있지만, 설마 합의한 법안을 되물리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다음으로는 한국의 산업구조가 느리지만,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신호탄이 쏘아졌다. 한국은 중화학 공업이 몰락하는 과정 속에 있다. 선박, 자동차, 화학, 철강산업 등이 그 축인데 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이 원인이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은 이들 사업에서 영원히 중국에게 경쟁우위를 유지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헤매는 듯하던 중국이 어느새 한국 기업들을 따라잡았다. 이제 중국의 중화학 제품과 한국의 중화학 제품은 세계 도처에서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서서히 우리가 밀리는 양상이다.
이렇게 끝이 나나 싶었는데 희소식이 들려왔다. 한국의 바이오산업이 2019년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셀트리온이라는 바이오시밀러 업체가 선두에 나섰다. 바이오시밀러는 일종의 복제약이다. 하지만 이전의 화학 방식 복제약과는 성질이 완전히 다르다. 매우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이곳만 두각을 보인 것은 아니다. SK그룹의 제약 및 바이오기업들이 까다롭기로 이름난 미국 FDA에서 신약 판매 허가를 얻었다.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치료제가 미국에서 FDA 판매 허가를 얻었다. 에이치엘비, 메지온, 한미약품, 녹십자와 같은 중견 제약사도 미국 시장을 부단히 노리고 있다. LG화학이나 코오롱 그리고 다른 제약기업도 미국 임상시험에 공을 들이고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들도 글로벌 신약 개발 업체로 뛰어오를 것이다. 바이오 제약산업을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 앞으로 이 산업이 한국을 먹여 살릴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 산업은 대표적인 고기술 분야다. 연구력이 없으면 엄두를 낼 수 없다. 그리고 대표적인 규제산업이다. 약품 하나 개발하는 데 20~30년은 보통이다. 그리고 심사과정이 매우 까다롭다. 한국에서도 까다롭지만, 미국에서 심사과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친 기업들이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우선 부가가치가 다른 제조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약에 따라서는 같은 중량인 황금의 가격을 넘어선다. 중국이 쫓아오기 매우 어렵다는 측면도 있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FDA 심사과정을 뚫어야 하는데 중국 기업의 실력으로는 아직 어렵다.
또 있다. 전과는 매우 다른 양상의 기업이 점차 늘고 있다. ODM이나 CMO라는 비즈니스에서 활약하는 기업들이다. ODM이란, 자체 브랜드와 시장은 없지만 브랜드 기업들을 대신해 제품을 개발·생산해주는 업을 말한다. CMO는 제약업에서 ODM 같은 기업이다. 시몬느라는 회사는 미국의 명품 핸드백 업체에서 제품을 개발·생산하여 납품한다. 코스맥스라는 회사는 한국과 중국 화장품 기업을 대신해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랑스 화장품 기업도 이 회사 단골이다. 스포츠화를 만드는 화승엔터프라이즈도 신발업계의 유명한 ODM회사다. 셀트리온은 국제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CMO회사다.
이들 ODM 및 CMO 기업은 자신의 브랜드만 없지 글로벌 수준에서 가장 높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사업을 한다. 영원무역도 여기 해당한다. 의류계의 국제적 기린아다. 대략 이 정도만 예를 들었지 한국에는 더 많은 ODM과 CMO 기업이 활약하고 있다. 이들이 중요한 이유는 부가가치가 달라서다. 이들의 상당수는 과거 OEM비즈니스를 하던 곳이다. 모기업과 하청관계를 기반으로 생산만 대신해주는 사업을 말한다. 이 비즈니스는 부가가치가 낮다. 이런 사업을 하던 기업들이 ODM기업으로 변모한 것이다. 실력이 없으면 이 사업은 불가능하다. 이런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음도 한 줄기 빛이다.
또 다른 희망의 빛은 BYC 완주공장에서 비추어졌다. BYC는 속옷을 전문으로 만드는 곳이다. 한때 한국 속옷 시장의 강자로 불리며 성장했던 회사다. 그런데 이곳이 어려워졌다. 특히 완주공장이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에 빠졌다. 완주공장은 실을 짜는 방적공장이다. 여기서 짠 실로 속옷을 만든다. 회사는 이곳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더는 원가를 유지할 힘이 없어서다. 그런데 이곳 근로자 14명이 모여 완주방적공장을 사들였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 자본금을 마련한 뒤 공장을 인수한 것이다. 이 일이 희망의 빛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너져가는 한국 제조업을 되살릴 수 있는 마지막 힘이 남았다는 것이 반가워서다. 그리고 평생 월급만 받아 살던 근로자들이 회사를 살려보겠다고 나선 일이다. 이들이 단순히 의기투합만 하지만 않았을 것이다. 살릴 수 있는 근거를 보았기 때문에 나섰을 것이다. 이 회사가 성공적으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이는 한국제조업의 새로운 방식이 될 수 있다. 애정과 애착으로 무장한 누군가가 기업을 운영하면 그 회사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이곳은 한국 제조업의 새로운 희망의 빛을 쏘아 올리는 곳이 된다.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