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쎈돌’ 이세돌 9단은 3년 전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세기의 대국(다섯 차례) 중 딱 한 번 이겼다. 인간이 AI와의 맞대결에서 거둔 유일한 1승이다. 그 4국에서 이 9단은 ‘비세’에 놓이고 초읽기까지 몰린 속에 회심의 한 수로 전체 판세를 뒤집었다. 판 중앙의 흑돌(알파고) 두 점 사이에 백 78수를 끼워넣는 묘수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리고 결국 항복을 선언하게 만들었다. 이 9단의 78번째 그 수는 이른바 ‘신(神)의 한 수’로 불리며 세간에 회자됐다.
이번 국산 바둑AI ‘한돌’과의 치수 고치기 3번기 중 첫 판인 그제 대국에서도 같은 장면이 나와 화제다. 우변과 중앙에 걸친 흑(이세돌) 대마가 상대 포위망에 갇힌 상황에서다. 그러자 이 9단이 78수째로 중앙에 착점해 백의 요석 3점을 잡았다. 여기서 승부가 갈렸다. 78수가 또 ‘신의 한 수’로 작용했으니, 우연치고는 너무 절묘하다.
일반 관용어가 되다시피 한 ‘신의 한 수’는 중국 진나라 고문헌에 나온 신수(神手)가 원조 격이다. 신적인 수준의 탁월한 판단으로 판세를 뒤엎는 바둑의 수를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1998년 일본 만화 ‘히카루의 바둑’(우리나라에는‘고스트 바둑왕’으로 출간)에서 신의 한 수라고 표현한 것이 우리 쪽으로 건너온 이후 점차 퍼져나갔다.
그런데 이 9단의 첫 판 승리를 두고 뒷말이 많았다. 알파고의 업그레이드 버전보다 더 뛰어나다고 평가된 한돌이 어이없는 실수로 졌기 때문. 상대에게 두 점을 먼저 깔아주는 접바둑의 핸디캡이라 해도 납득이 잘 되지 않았다. 이에 국산 바둑AI의 수준이 낮은 게 아니냐, 한돌에 버그(프로그램 오류)가 생긴 게 아니냐 등의 의견이 제기됐다. 그렇다 해도 한돌은 올해 8월 세계 AI바둑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고, 앞서 우리나라 최정상급 프로기사 5명과의 호선(맞바둑) 대국을 모두 이겼다. 다만, 접바둑은 이번이 처음이라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가장 유력한 패인인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호선의 제2국에서는 한돌이 보란 듯이 이 9단을 불계로 꺾었다. 호선 대국에서의 AI는 철벽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점에서 앞으로 두 점 혹은 세 점 접바둑이 아니고서는 AI를 이기기 어렵지 싶다. 현실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이 9단의 말처럼 AI와의 대결은 승패를 떠나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다시 두 점 접바둑이 된 21일 마지막 제3국에서는 이 9단이 멋진 승리로 은퇴의 대미를 장식했으면 좋겠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