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질빵’이란 덩굴을 아시는지요? 농사일을 거들기 위해 처가에 온 사위가 행여 너무 고된 등짐을 질까 걱정되어 힘없이 툭, 툭 잘 끊어지는 덩굴로 지게의 밀삐나 등짐 멜빵끈을 해주고 일이 끝난 뒤엔 씨암탉까지 잡아 몸보신 시켜서 보낸 장모님 마음이 담긴 덩굴 이름이지요.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그 말에 딱 들어맞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쌀이 귀하던 시절, 어떤 집 며느리는 메로 올릴 밥이 뜸 들었나 알아보기 위해 밥 몇 알 집어 맛보다가 시어머니께 맞아 죽어 ‘며느리밥풀꽃’이 되었다는 슬픈 전설도 있군요. 우리 집 며느리가 저 집의 사랑하는 딸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고부갈등을 부추기는 슬픈 이름은 애초부터 없었겠지요. 남의 집 아들인 사위는 끔찍이 아끼고 사랑했으면서도, 남의 집 딸인 며느리는 왜 그렇게 미워했을까요? 요즘이야 이런 대접 받고 살아갈 며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만,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거칠게 드러내는 그 이름만큼은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며느리도 이제 내 집 식구가 되었으니 딸처럼 따뜻하게 맞이한다면 갈등을 부추기는 이런 이름도 사라지고 시어머니에 대한 며느리의 반감도 줄어들지 않을까요?
‘쪽빛 하늘 바라보다/괜스레 웃음 난다//저게/만약/툭 터져서/쏟아져/내린다면//싸울 일/진짜 없겠네!/온누리가/청군이니’(변현상 ‘쪽빛 하늘 바라보다’ 전문)
변현상 시인의 ‘쪽빛 하늘 바라보다’는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스러운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보수와 진보, 기성세대와 신세대, 노와 사,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흑백으로 갈라진 세상을 답답하게 여긴 시인은 가을 하늘을 쳐다보다 저 쪽빛 하늘이 ‘툭’ 터져 내린다면 ‘온 누리’가 푸르게 물들어 ‘청군’이 될 터이니 같은 편끼리 싸울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상상하며 환하게 웃습니다. 갈등을 극복하고 모두 한 편이 되어 조화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잘 담아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옛사람이 꿈꾸었던 무릉도원은 바로 갈등 없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일 겁니다. 정해송 시인은 그 무릉도원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군요.
‘도화 뜬 강 저편에/문명 없는 삶이 있어//너는 내 속에 있고/나는 네 속에 있어//너와 나/나누지 않고/한 뿌리로 사는 마을’(정해송 ‘무릉도원’ 전문)
‘너와 나 나누지 않고 한 뿌리로 사는 마을’인 무릉도원엔 시기나 질투, 탐욕이 없으니 당연히 다툼도 갈등도 없겠지요. 갑질로 세상이 갑갑해지는 일은 더욱 없을 거고요. 불법적인 불공정뿐만 아니라 합법적인 불공정도 당연히 없어서 사촌이 논을 사도 배가 아플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꽃 중에는 꿀을 분비하는 부위를 다른 부위와 구별하여 반점 따위로 특별하게 표시하는 꽃이 있는데 이 현상을 허니 가이드(honey guide)라 합니다. 허니 가이드는 꽃이 자신의 수정을 도와주는 벌과 나비들을 배려해서 꿀을 쉽게 채취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주는 구실을 합니다. 수정을 도와주는 벌과 나비에게 좀 더 쉽게 꿀을 채취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허니 가이드야말로 공생의 한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도 꽃과 곤충의 관계와 같이 서로를 배려하고 보완해주는 공생 관계가 되어야 정상적으로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보수는 뼈대가 낡아 허물어지고 진보는 혈관이 혈전으로 막혀 있습니다. 서로서로 도와주는 공생 관계라기보다 오히려 공멸하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불구대천의 원수 같습니다. 어찌 보면 자해 수준입니다. 보수와 진보는 상대 진영의 흠결을 보기 전에 허물어지고 막혀 있는 자신의 내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낡아서 허물어진 보수는 다시 보수해야 뼈대가 바로 설 수 있고, 혈전으로 막힌 진보는 탁한 피를 맑게 해야 피 돌림이 잘되지 않을까요?
보수든 진보든 ‘며느리밥풀꽃’에 담긴 마음이 아니라 ‘사위질빵’에 담긴 마음으로 서로 상대를 배려하고 인정할 때, 그들이 선거 때마다 공약으로 내거는 ‘같이’의 가치를 제대로 구현해서 정말로 살기 좋은 나라 ‘너와 나 나누지 않고 한 뿌리로 사는 마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궤변과 혹세무민의 말들이 난무하여 혼탁하기만 했던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내년엔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기를 꿈꿔 봅니다.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