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루가 멀다 않고 의료계를 힘들게 하는 정책과 법인이 쏟아지고 있다.
외래 초진 환자는 3장, 입원 초진 환자는 6장의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규정이 생겼다. 여기에는 환자의 기본 정보 및 증상에 대한 것 외에도 과거 의료에 대한 모든 내용을 기록하게 되어 있고 음주, 흡연 등 개인 기호 및 가족과 친·인척의 의학적 문제, 초기 진단명 및 알 수도 없는 타 병원 치료 기록, 진찰 기록, 병과 무관할 수도 있는 모든 환자의 신장, 체중까지 적게 되어 있다. 입원 환자는 치료 계획 및 기대 치료 효과까지 쓰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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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서상균 |
한마디로 그 환자의 과거 현재 미래 및 그 가족 친척의 의료 상황도 기술해야 하고 병의원에서 알 수도 없는 다른 병원 기록까지 적으라고 하고 있다.
이것을 다 쓰려면 환자 1인당 족히 30분은 걸릴 것이다. 여기 들어가는 인력과 시간에 대한 보상은 전혀 없는 채 말이다. 또한 복지부가 병·의원에 요구하는 서류 종류는 무려 37종이다. 여기에 결핵 예방 교육, 의료 폐기물 배출자 교육, 진단용 방사선 안전관리책임자 교육, 산업 안전 보건교육, 퇴직연금교육, 개인정보 보호 교육,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 교육, 노인학대 신고 의무자 교육 등 연 1~4회 받아야 하는 교육만 1년에 십여 가지 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자료 제출 고시, 공기 질 관리 자료, 안전관리 요원 자료, 감염관리를 위한 방문객 통제 자료, 수술실 출입관리 기록 등 37종 서류 외에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교육과 자료 제출은 물론 감염병 신고, 마약류 신고 등 수많은 행정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구급차 대행 업체가 있는데도 쓰지도 않는 구급차를 의무로 구매해 10년마다 새 차로 바꿔야 하고, 입원 환자가 있는 병·의원은 낮에는 근무하지 않는 당직 의사도 의무적으로 밤에 상주해야 한다. 여기에 소방, 노무 등 모든 회사에 적용되는 규정은 당연히 지켜야 하며 병·의원의 직역별로 구분된 일을 다른 직역의 직원이 수행하면 영업 정지 처분이 뒤따른다.
최근 6460원 착오 청구를 한 의원은 45일 영업 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올해 들어서만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각종 고시와 훈령이 330개가 넘을 정도로 매일 같이 규제가 쏟아져 나온다.
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행정처분을 받고,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정부가 보건의료의 질을 높이겠다고 쏟아낸 각종 고시와 훈령을 지키느라 환자 볼 시간이 줄어 오히려 보건의료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으며 병·의원을 하지 말라는 말이냐고 묻는 원장들도 있다.
이뿐 아니다. 죄가 없다고 판결이 났는데도 분만 시 사고가 생기면 무죄인 의사가 30%를 책임져야 한다. 직원을 구할 수도 없는 지방 의료 소외 지역 병원은 직원 충원을 하지 않았다고 적발돼 병원 문을 닫기도 했다. 수술실 CC TV를 설치하자는 법안도 나와 있는데 왜 심심찮게 문제가 되고 있는 식당 주방, 자동차 수리소, 관공서에는 CCTV를 설치하자고 하지 않는가? 의료계가 잘못해서 이런 규제가 생겼다고 말할 수도 있으나, 일부가 잘못했다고 해서 전체 집단을 잠재적 범법자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보험회사는 손해가 조금이라도 나면 국가가 나서서 손해를 보전해 주려고 보험료를 올리는데 보험업계보다 30배 인력을 더 고용하는 의료계는 병·의원이 망하건 말건 정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의료는 공공재라고 하면서도 정부는 중소 병·의원을 위한 예산은 없다.
우리나라 의사는 확실히 힘이 없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책에 아무리 의견을 내고 항의해도 정부 뜻대로 결정되고 만다. 우리나라 의료계는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주도자가 아니라 정부가 국민에게 베푸는 시혜를 위해, 정부에 의해 관리되고 규제받는 도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9년 의료계의 연말은 우울하다.
박원욱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