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와 부산시의회가 요즘 다투고 있다. 시청 바로 앞에 짓기로 한 행복주택 때문이다. 시가 주민 민원과 연제구의회 반대를 이유로 2개 단지 1800세대 규모를 600세대 이상 줄이고 그 자리에 공공기관을 배치하려한 게 발단이다. 배용준 시의원은 “민원을 핑계로 청년들의 꿈을 짓밟는다”며 부산시의 행복주택 축소를 ‘사건’으로 표현했다. 시의회는 최근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7명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렸다. 시장이 같은 당 소속 시의원들로부터 공격당하는 모습은 부산시정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청 앞 행복주택은 청년과 신혼부부 주거난 해소책으로, 기존 소규모 변두리 임대주택과 달리 초역세권 대단지여서 전국적 모범사례로 꼽혔다. 하지만 오 시장 취임 후인 올 초부터 기류가 바뀌었다. “시청 주변에 아파트가 너무 많아 베드타운으로 전락한다” “주변 집값 하락이 우려된다” 등의 반대 여론이 있다며 사업 재검토설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7월엔 급기야 시가 사업 축소 방침을 확정했다. 그것도 부산을 청년이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겠다며 2022년까지 5000억 원을 투입하는 ‘민선 7기 청년정책로드맵’을 대대적으로 발표한 지 보름 만의 일이다. 당연히 “자가당착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국비와 기금으로 가능했던 사업에 700억 원 가까운 가욋돈을 시비로 자체 부담하게 생겼다는 사실도 최근 추가로 드러났다. 시의회 주변에선 “오 시장이 전임 서병수 시장 추진 사업이란 이유로 별 고민없이 뒤집었다가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말이 나온다.
부산시민공원 주변 재개발 사업에 대한 부산시 행정은 더 이해하기 어렵다. 당초 서 시장 시절 확정된 재정비 촉진계획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사업을 재검토하기로 한 것까진 그렇다 치자. 당시에도 공공의 자산인 시민공원을 60층 이상 초고층 아파트가 병풍처럼 에워싸 사유화하는 게 옳으냐는 비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 4개 촉진구역 주민들로부터 “시장 바뀌었다고 손바닥처럼 뒤집을 수 있느냐”는 거센 반발이 당연히 터져 나왔다. 그런데 최근 시와 조합이 합의해 발표한 최종 결정내용을 보면 층수가 일부 낮아졌을 뿐 동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원안보다 빽빽해진 것이다. 조합이나 시공사 측에선 “시장 바뀌기 전에 사업을 빨리 끝내자”는 말도 들린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문제 삼는 환경단체도 한 곳 없다.
그동안 부산시 정책 중에서 사업 방향이 바뀌거나 완전히 뒤집힌 게 굵직한 것만 꼽아도 열대여섯 건은 된다. 사직 야구장 돔구장, 원도심 4개구 통합, 뉴스테이 등은 없던 일이 됐고 서부산청사 건립 사업, 등록엑스포 개최지 등은 수정됐다. 동해선 원동역사, 버스전용차로(BRT), 부전천 복원, 오페라하우스 등은 뒤집혔다가 다시 돌아왔다. 이런 문제에 대한 언론 지적에 오 시장은 취임 1주년 인터뷰에서 “그럼 문제가 있는 시책을 계속 밀어붙이라는 거냐”고 항변했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중단한 사업을 다시 원점으로 환원시킨 데 대해선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궁금하다.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과 비교하지 않고는 아무런 아이디어도 생각해 낼 수 없는 것 같았다.” 미국 뉴욕대 미디어학 교수인 마크 크리스핀 밀러가 부시 전 대통령을 비판하며 쓴 책(‘부시의 언어장애’)에 나오는 구절이다. 아들 부시 행정부는 전임 클린턴의 흔적 지우기에 몰두했다. 그 결과는 ‘ABC(Anything But Clinton·클린턴만 아니면 돼) 증후군’으로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노무현만 아니면 돼(ABR)’나 박근혜 정부의 ‘이명박만 아니면 돼(ABMB)’도 역시 같은 맥락이다.
전임자 흔적을 지운 자리에 자신의 치적을 쌓고자 하는 유혹은 누구나 갖기 쉽다. 임기제이고 선출직일 경우엔 이런 경향이 더 강하다. 오거돈 시장은 3번의 도전 실패 끝에 4번째 부산시청 입성에 성공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은 만큼 전임시장 때의 일들이 눈에 차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취임 후 빚어진 일련의 추진사업 뒤엎기의 혼란은 대부분 ‘ABS(서병수만 아니면 돼)’에서 빚어졌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임기 4년의 시장에게 1년반은 탐색만으로 시종할 기간이 아니다. 그동안 지역을 다시 들쑤시면서 요란스레 팡파르를 울린 관문공항 재추진말고는 무엇을 이루었는지 솔직히 잘 떠오르지 않는다. 관문공항 역시 ABS였고 그나마도 지지부진한 채 가덕도신공항 추진이란 옛 이름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렇게 엄호하던 경제부시장의 검찰 수사 문제마저 다시 불거져 시정을 어지럽히고 있다. 이런저런 난맥상들을 사상 처음 시장직 정당 교체에 따른 시행착오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부산은 기다릴 여유가 없다. ABS가 아닌 오거돈표 성과를 내놓을 때가 됐다.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