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경남 진해에서 보낸 어린 시절, 환호하던 간식 중에 ‘진해콩’이 있었다. 진해콩이라 해서 콩으로 만든 간식은 아니었다. 추측이지만, 설탕을 바르고 바르면서 콩 모양 백색 사탕과자로 만들었다. 크기가 콩만 해도 어른 이로 깨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사탕이었다. 콩 같은 그 한 알을 종일 입안에 넣고 다녔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살다 온 외할머니는 진해콩을 일본 이름인 ‘진카이마메(鎭海豆)’로 불렀다. 친손, 외손이 모이면 한 알씩 나눠주며 ‘진카이마메는 현해탄을 다 건너가도록 녹지 않는다’고 했다. 우스개 말씀이었지만 그만큼 단단했다는 이야기였다. 단단하니 이를 조심하라는 당부 역시 잊지 않았다.
지난봄, 진해에서 활동하는 이애옥 씨를 만나 번역서 ‘한일역사여행 진해의 벚꽃’을 선물받았다. 지은이는 고베 출신 다케구니 도마야스(70) 씨였다. 일본인 저자는 진해가 고향인 필자보다 진해를 넓고 깊이 알고 있는데 놀랐다. 진해를 방문해 발로 조사했고, 한일 양국 자료를 찾아 ‘벚꽃 도시 진해’가 놓치고 있는 많은 자산을 제자리로 복원해 놓아 감탄했다. 이 책은 1999년 일본어로 발간됐다. 진해 사람 이애옥 씨는 발간 20년 만에 한국어로 번역해 지난 3월 한국어판을 펴냈다. 책을 받고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단숨에 다 읽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1930년대 진해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내 입이 추억하던 진해콩에 대해서도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 따르면 진해콩은 ‘1915년경 초대 아이카와 다지로가 고안했다’고 한다. 그 근거는 일본어로 발간된 ‘진해요람’(1926년)에서 찾았다고 했다. 그것으로 그동안 진해콩을 처음 만든 창업자를 둘러싼 ‘진해 경화설’ ‘마산설’을 일축하고 원조를 바로잡았다. 진해콩은 100년 넘는 역사를 가졌다. 이 사실은 저자 다케구니 도마야스 씨가 아이카와 다지로 씨의 생존하는 큰손녀 아이카와 가즈에 씨에게서 받은 편지에도 세세히 나와 있다. 이애옥 씨 도움으로 번역된 아이카와 다지로 씨의 서한에는 ‘진해로 건너간 시기는 잘 모르지만, 러일전쟁이 끝나고 나서니까 메이지 42, 43년 무렵이 아닐까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도쿄에서 과자 제조를 큰 규모로 하고, 종업원도 많이 고용 해 지점도 4, 5채 있었으며 도매를 주로 하고 있었다’고 했다. 메이지 42, 43년은 1909, 1910년이다. 또한 진해콩에 대해서는 이렇게 회고했다. ‘진해콩 제조는 할아버지가 진해에 건너온 뒤 고안해 제조했다. 종업원은 처음에는 적었던 것 같다. 내가 어릴 때는 일본인 3명, 조선인 남자 어른 서너 명에 15, 16세 계산원이 3명. 아버지가 공장 쪽을 감독하고, 가게 쪽은 할아버지가 지배인을 고용해 마산 진주 대전 진해의 가게는 물론, 해군 방위대, 요항부, 구축함, 해군 가족의 구매회 · 집회소(하사관이 모이는 곳)에 납품했다.’
진해콩 공장 위치는 ‘다치바나도오리(현 진해역에서 해군사관학교까지 이어진 대로)의 미나미쓰지(현 남원로터리) 근처에 살고 있었다’고 밝혔다. 주소가 남아 있지 않아 남원로터리 부근으로 추측할 뿐이다. ‘진해요람’에 진해콩은 ‘조선 전역에 수출되고, 나머지는 각 함대의 군용납품과 멀리 일본의 각 지역을 향해 수출 중이다’고 소개돼 있다. 진해는 진해콩 덕분에 일제강점기 조선뿐 아니라 일본에서까지 유명해졌다.
단단한 달콤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1930년 3월 10일 일본 육군기념일에 진해에 대참사가 있었다. 3월 11일 자 오사카 마이니치신문 1면에 ‘육군기념일에 대참사, 보호자 3명과 소학생 101명이 불에 타 숨지다’는 기사가 대서특필 돼있다. 일본이 육군기념일을 맞아 일본인만 입장시킨 채 영화 상영을 하다 불이 나 모두 타 죽은 사고였다. 진해의 일본인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진해콩의 슈지로 사장은 8· 6· 4살 3남매를 잃었다. 그 집 아이들을 봐주던, 진해 경화동에 살던 당시 열두세 살 어린 조선 소녀 박귀순(朴貴順)도 희생당했다. 유일한 한국인 희생자였다. 박귀순은 그 집에서 ‘스니짱’으로 불렸다. 저자는 ‘순아’ 부르던 이름을 스니짱으로 불렀던 것으로 본다. 박귀순의 아버지는 가게에서 진해콩을 볶는 일을 했다고 한다. 어린 자식을 화마로 보낸 유일한 조선인 부모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런 사실은 진해콩에 얽힌 슬프지만, 중요한 진해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한때 진해콩 맛이 유명했듯이, 진해콩 역사가 진해 구도심 문화를 살리는 진해만의 문화콘텐츠는 될 수 없는 것일까? 기다려진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