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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공화국’ 의미 퇴색한 대한민국 /차동욱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0-30 19:54:10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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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하고 있다. ‘민주’의 의미에 대해서는, 한편으로는 모두가 공유하는 공통의 의미가 있는 것처럼 당연히 여겨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들의 가치와 철학만을 담아야 하고 다른 이들의 가치와 철학은 배제되어야만 존속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여하튼 ‘민주’의 의미는 국민 개개인이 자기만의 민주가 따로 있을 정도로 일상의 삶 속에 녹아들어 있다.

그런데 ‘공화’의 의미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물론 관련 학계에서는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일반 국민에게는 그다지 생각해 볼 필요가 없는 개념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국민 상당수가 특정인에 대한 지지와 반대로 나뉘어 최소한의 도덕과 상식조차도 공유를 못 하고 상대방이 없어져야만 대한민국이 바로 서는 양 광장에서 목청을 높이고, 이도 저도 아닌 이는 양쪽으로부터 비겁자란 비난을 들으며 세상사에 대한 관심을 끊어버리는 현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공화국이어야 함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민주화 과정을 겪으면서, 순수 혈통의 단일민족, “우리가 넘이가”라는 개념이 통용되는 한국 사회의 집단들은 민주주의는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을 전제한다는 동일성 민주주의의 배타성에 쉽게 집착했다. 그러다 보니 좌·우, 진보·보수로 사회 구성원 간의 이질화가 심화돼 왔다. 물론 한국 사회만이 겪는 문제는 아니다. 유럽의 국가들도 동일성 민주주의를 강조할 경우 표출되는 이질적 집단에 대한 폭력적 배타성의 문제를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공화국(共和國)은 단지 왕이 없는 국가가 아니라, 앞에서 말한 사회 구성원 간의 집단적 이질화, 즉 사회 내에 존재하는 동(同)과 동(同)들의 충돌을 해결하는 원리와 방식이다. 동(同)은 인종, 성별, 연령, 언어, 문화, 이념, 계급, 계층 등 한 사회 내에서 그 구성원을 구별할 수 있는 다양한 기준에 따른 동질성을 지칭한다. 한 사회 전체가 하나의 동질적 공동체인 경우는 거의 없으며, 서로 이질적인 공동체들이 복잡하게 엮여서 한 사회를 구성하게 된다.

한 사회의 개별 구성원도 그 사회 내에 있는 하나의 동질적 공동체에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구별 기준에 따라 중첩적으로 여러 동질적 공동체에 속하게 된다. 한 개인이 여러 동질적인 공동체에 중복적으로 속해 있는 만큼, 각 공동체의 구속에서 벗어나서 판단할 능력도 길러질 수 있다. 즉, 이질적인 것과의 조화를 쉽게 이룰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속한 여러 동질적 공동체 중 하나만을 자신 정체성 인식의 근거로 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여러 동질적 공동체에 소속되게 만든 자기 내부의 서로 이질적 요소를 잘 조화시켰을 때,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동양의 고대 사상가들도 공동체의 존립과 영속을 위해서는 동(同)을 극복하는 화(和)가 중요함을 강조해 왔다. ‘국어(國語)’에 ‘화실생물 동즉불계(和實生物 同則不繼)’라는 구절이 있다. 이질적인 것과 조화를 이루면 번영하지만 동질적인 것에만 의존하면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논어(論語)’에도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란 구절이 있다. 군자는 잘 어울리지만 자기와 똑같아지기를 바라지 않고 소인은 자기와 똑같아지길 바라지만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공화(共和)는 화(和)를 통해서만 동(同)들이 극단적인 갈등으로 나아가지 않고 공동(共同)을 이루고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단, 여기서 공동(共同)을 유지하는 화(和)는 공존을 위한 단순한 협상의 기술이 아니라 구속성을 갖는 원리와 원칙이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는 “공화국은 인민의 소유물”이라고 하면서, 여기에서 “인민”의 의미를 “아무렇게나 연합된 모든 인간집단”이 아니고, “법과 권리를 존중하겠다는 의견 일치”를 토대로 하여 결합된 “많은 사람의 집합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무엇이 ‘법과 권리’인가에 대해서조차 공유되는 부분이 없는 것 같다. 공화(共和)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이다.

동의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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