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에 경제·교육까지…문 대통령의 만기친람’. 지난 25일 자 경향신문 4면 기사 제목이다. ‘조국 정국’ 돌파를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주요 국정 현안을 직접 챙기는 일이 잦아”지는 현상에 대한 비판이 요지다. 대통령은 이날 ‘교육개혁관계장관회의’를 주재했다. 서울 주요 대학 학생부종합전형 비중을 낮추고 정시(수능위주전형)를 확대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대통령이 교육현안만 따로 떼어내 직접 관련 회의를 열기는 취임 후 처음. 언론은 조국 일가 의혹과 관련, 민심이 가장 분노한 대학입시의 ‘공정’ 문제를 돌파하기 위한 나름의 승부수로 해석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의 ‘교육부 패싱’이었다. 대통령이 ‘정시 확대’를 처음으로 공개 언급한 것은 지난 22일 국회 시정연설. 교육부는 연설문 초안이 당일 오전 배포된 이후 문의가 빗발치자 그제야 파악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더 큰 문제는 엇박자. 바로 전날 국정감사에서 유은혜 장관은 “수능은 ‘오지선다’라서 창의적 교육과 배치된다”며 정시확대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이에 대해 대안신당 박지원 의원이 분노를 터뜨렸다. “문재인 정부에 비교적 협력했던 저마저도 실망과 분노가 치밀었다…대입 제도 변경을 교육부도 몰랐다는데 (시정연설) 원고는 하늘에서 떨어졌을까요.”
대통령이 모든 국정현안을 직접 챙기는 ‘만기친람(萬機親覽)’ 논란은 역대 정권에서 늘 있었다. “초권력 청와대, ‘제왕적 대통령’의 시대로?:이명박 ‘만기친람’의 예고편”(프레시안 2008년 1월 8일), “박근혜 대통령 국정 6개월 ‘만기친람’:1인 체제 공고화”(경향신문 2013년 8월 24일) 등 관련 기사가 넘친다. 예나 지금이나 언론이 대통령의 만기친람을 지적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관료들은 성과 위주의 형식적 보고에 그치게 되고, 대통령의 인식은 민심과 더욱 간극이 벌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2017년 3월 박근혜 정권 몰락 직후, 동아일보가 이유를 분석한 기사 중 한 대목이다.
대통령 역시 비슷한 문제인식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선거가 한창이던 2017년 4월 23일 3차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책임총리제·책임장관제를 통해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 내각에 책임과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청와대에 집중된 힘을 분산하겠다는 공약으로 받아들여졌다. 취임 직후만 해도 약속이행에 대한 기대는 컸다. 커피잔을 든 채 참모들과 청와대 경내를 산보하는 대통령. 그의 탈권위주의적 소탈 행보가 권력 작동 방식에도 변화의 바람을 예고하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출간된 책 한 권이 대통령을 직격했다. 진보 정치학자 박상훈이 펴낸 ‘청와대 정부’. 그는 “대통령이 자신을 보좌하는 임의조직인 청와대에 권력을 집중시켜 정부를 운영하는 자의적 통치체제”를 ‘청와대 정부’로 규정했다. 모델케이스로 문재인 정부를 들었다. “‘거대한 청와대’가 내각과 국회와 같은 민주주의 여러 요소를 무시”할 가능성을 지적했다. 그로부터 1년여, 대통령은 의혹투성이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밀어붙였다. 과반 여론의 반대도, 야당의 강력 반발도 “명백한 위법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묻혀버렸다. 총리도, 여당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결과는 모두 아는 대로 민생도, 경제도, 모두 ‘조국 블랙홀’에 빨려 들어갔다. 급기야 나라마저 두 동강이 났다.
검찰개혁 물꼬를 튼 뒤 자진사퇴로 ‘조국 대전(大戰)’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만기친람식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은 변함이 없다. 광장 풍경 또한 여전하다. 지난 주말 또다시 ‘기도’와 ‘촛불’을 각각 내세운 군중에 점령당했다. 역사는 제왕의 선의(善意)와 의지만 내세우다 좌절한 숱한 사례를 증명한다. 그래서 취임식 날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다”며 “군림하고 통치”가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을 힘줘 다짐했던 대통령. 명분으로 무장한 힘이 아니라 대화와 설득으로, 집중과 장악이 아니라 분산과 견제를 통한 권력 운용으로 모두가 받아들였다. 힘들수록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 ‘청와대 정부’가 아닌 ‘민주당 정부’로, ‘국민 모두의 정부’로 우뚝 설 수 있다.
부산가톨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