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구가 1000만 명을 돌파한 게 1988년의 일이었다. 작가 이호철이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를 발표할 때인 1966년의 인구는 370만 명. 해방 당시 100만 명 선이던 인구가 20여 년 만에 3배 이상 늘어 곳곳에서 만원이라는 아우성이 나올 만했다. 그것도 모자라 20여 년 뒤에 또 세 배 가까이 증가했으니 초만원이란 말로도 부족했다. 개발 광풍의 시대, 꾸역꾸역 몰려드는 사람들로 넘쳐났지만 한편에선 수도 서울이 인구 1000만 명을 넘긴 메트로폴리스로 성장했다는 자부심도 없지 않았다. 성장이 만능이었던 시대였다. 서울 인구 1000만 명 돌파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지표이기도 했다.
그랬던 ‘서울 인구 1000만 명’이 곧 붕괴된다는 소식이다. 지난주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서울 인구는 외국인을 포함해 1004만9607명으로 조사됐다. 2011년 1052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지속적인 감소세를 고려할 때, 이르면 올해 말 1000만 명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거기에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14.4%를 차지,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활력을 잃고 있다고 전망했다.
‘늙고 쪼그라드는 도시’. 서울 인구 1000명 붕괴를 전하는 중앙 언론의 대체적인 우려를 요약하는 말이다. 서울이 이대로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묻어 있다. 중앙집권과 저출산 고령화에 진작부터 시달려온 지방에선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상징인 수도 서울이 늙고 쪼그라들어서야 될 일인가. 일부 언론은 위기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재개발이나 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적극 추진, 주택 공급을 늘려 인구 이탈을 막아야 한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인구 1000만 명 붕괴가 엄청난 큰 일인듯 호들갑이다.
서울 인구 감소의 원인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우선 서울과 지방을 가리지 않는 심각한 저출산이 꼽힌다. 이와 함께 서민들로서는 꿈도 꾸기 힘들 정도의 높은 집값을 들 수 있다. 집값을 잡으려는 정부의 서울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은 백약이 무효였다. 이 밖에 국토균형발전 등 정부의 인구 분산정책도 일정 부분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복합적인 요인 중 저출산이야 서울인들 현재로선 별다른 도리가 없다. 그나마 정부의 인구 분산정책이 효과를 봤다고 해도 이 또한 영향은 제한적이다. 결국 주요인은 주택 문제일 수밖에 없다.
서울 시민과 중앙언론 시각에선 호들갑을 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심각한 중앙집권을 우려하는 지방 입장에서 서울 인구 감소는 바람직한 방향이다. 문제는 이게 고스란히 수도권 비대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마냥 반기기만 할 일도 아니다. 이탈한 서울 인구가 여타 지방에 골고루 분산되는 게 아니라 경기와 인천 등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밀려난 주택 난민이 수도권을 더욱 살찌우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게 인구 1000만 명 붕괴의 본질인 셈이다.
이는 최근 한 통계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우리나라 인구는 5170만9000명으로 이 중 수도권이 49.98%, 지방 인구가 50.02%를 차지했다. 지방 인구가 고작 2만1000명 많았다. 매달 1만 명가량이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순이동하는 걸 고려할 때, 이달 중이미 수도권 인구가 지방 인구를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도권 인구가 총인구의 50%를 넘는 초유의 일이 생기는 것이다. 수도권 블랙홀은 인구를 더 빨아들여 오는 2045년이면 비율이 51.6%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2030년 전후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줄 것으로 보이는데도 수도권은 계속 공룡이 돼 가는 셈이다.
주목할 것은 2017년부터 수도권 인구 비율이 급격하게 늘어난 점이다. 노무현 정부 때 추진됐던 국토균형발전 정책이 보수정권을 거치며 빛이 바래진 후폭풍으로 보인다. 이 뒷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 노무현 정부의 균형발전을 이어가겠다지만 문재인 정부 정책도 점차 거꾸로 가는 듯하다. 수도권에 신도시 5곳이 추가로 건설되고, 서울과 수도권을 잇는 광역교통망이 속속 깔릴 예정이다. 정책 실패를 또 다른 잘못된 정책으로 덮는 악순환이다.
문 대통령 임기도 절반을 향하고 있다. 임기 초 그토록 강조했던 균형발전은 아득한 옛 얘기로 들린다. 공공기관 추가 이전은 표심과 연계해 군불만 때는 듯하다. 임기 초부터 과감하게 추진해도 쉽지 않은 판에 이미 동력은 급속히 떨어졌다. 그러는 새 ‘서울 공화국’은 ‘수도권 공화국’으로 이름만 바뀔 뿐이다. 수도권 인구 분산 정책의 역사는 무려 40년이 넘었다. 그렇게 긴 세월 속에서도 수도권 인구가 줄기는커녕 더욱 비대해지고 있다. 노무현의 정신을 계승한 문 대통령마저 실패한다면 누구에게 기대하겠나. 불행하게도 점점 그게 현실이 돼 간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